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중국

속보

더보기

평민으로 돌아가는 중국 '친민총리' 원자바오

기사입력 : 2013년03월05일 15:30

최종수정 : 2013년05월09일 11:23

[뉴스핌=강소영 기자]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5일 오전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1차 전체회의에서 마지막 정부공작(업무)보고를 마쳤다. 이로써 원 총리는 사실상 10년 간의 총리직을 마무리하고 회기중인 오는 14일께 전인대 선출 절차를 거쳐 리커창(李克强) 현 부총리에게 바통을  넘기게 된다. 

2003년 중국의 여섯번째 총리로 선출된 원자바오 총리는 집권기간 청렴한 이미지, 서민에게 다가가는 친민지도자의 모습으로 인민들에게 각인됐다.  에이즈 현장이든 자연재해든 원총리는 늘 고난에 처한 인민들과 함께 했다.  그는 쓰촨성 대지진 등 대형사고와 잇따른 자연재해 등 사고 현장에 항상 제일 먼저 도착해 어려움을 당한 인민들을 위무했다.  

그에 대한 인민들의 신망은 매우 두텁다. 지난 2009년에는 그가 항상 입고 다니던 허름한 점퍼가 10년 넘게 입은 낡은 옷으로 밝혀져 검소하고 청렴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굳혔고, 중국 국민의 원 총리에 대한 존경심도 더욱 깊어졌다.

원 총리는 지난해 10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농업을 발전시켜 중국의 식량문제 해결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점을 인정받아 자신의 얼굴이 새겨인 농민메달을 수여받기도 했다.

전인대 정부공작보고에서도 원 총리는 경제발전 모델 전환, 농업·농촌 발전, 민생개선을 통한 국민생활 수준 제고 등의 내용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당 해, 마지막까지 국민의 생활을 염려하는 '친민총리'의 모습을 지켰다.

권력지향적이기 보다 그는 늘 '경제대통령'이라는 총리직에 충실하고 국민의 민생과 안위를 걱정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통상 정치적 후계자를 양성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다른 지도자와 달리 원 총리는 이전 상무위원 가운데 특정 파벌에 크게 치우지지 않는 정치활동을 해왔다.  실제로 '리틀 후진타오'라 불리는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당서기 등 공청단 출신의 여러 지지세력을 형성한 후진타오 주석과 달리 원 총리는 이렇다할 정치적 지지세력이 없다.

그러나 작년 10월 말 뉴욕타임즈가 폭로한 원 총리와 그 일가의 재산 축재설로 인해 원 총리는 트레이드 마크인 청렴하고 검소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뉴욕타임스는 원 총리 일가가 약 27억 달러(약 3조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원총리와 중국 당국은 이를 음해성 보도라고 일축했다. 

중국 정부가 즉각적으로 중국 내 관련 매체들을 차단하고 중국 매체들도 보도를 하지 않아 일반 국민들은 원 총리의 재산 축재 스캔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원 총리의 부정 재산축재 진위를 확인하기 힘들지만, 그의 아내 장베이리(張培莉)가 중국 보석업게에서 '다이아몬드 퀸'으로 통하는 거물이라는 점, 그의 아들 원윈쑹(溫雲松)이 중국 20대 부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서민 총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원 총리를 '최고의 연기자'라 비난하며 그의 재산에 대한 정부조사를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이 스캔들이 원 총리에 대한 인민의 높은 믿음과 정치생명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임기간중 원총리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중국을 G2의 반열로 끌어올렸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유인우주선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으며 2012년에는 항공모함까지 진수시켜 경제대국에 이어 군사 우주 강국으로서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어쨌든 5일 12기 전인대 정부업무보고를 끝으로 원 총리는 지난 10년 간의 국무원 총리직을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명예롭게 정치 일선에서 물러는 성공적인 총리로 남게됐다. 

원자바오 총리는 1942년 톈진에서 태어나 1965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1968년 베이징 지질대학을 수료한 후 중앙에 진출할 때까지 간쑤성(甘肅省)에서 지질 관련 여러 관직을 맡았다. 1985년 공산당 중앙판공청 부주임을 시작으로 중앙에 진출한 원 총리는 덩샤오핑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1986년부터 1993년까지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게됐다. 

1997년~2002년 중앙정치국위원, 중앙서기처서기, 국무원 부총리의 요직을 거쳤다. 농업, 빈곤대책과 금융분야에서의 실무능력을 높게 평가 받아 2003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총리 당조서기로 발탁됐고, 같은해 3월 주룽지의 후계자로 국무원 총리에 선출됐다. 2008년 재선돼 현재까지 10년 간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해왔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

CES 2025 참관단 모집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국회 투입 계엄군 '특전사·수방사' 추정 [서울=뉴스핌]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인 4일 새벽 4시 27분께 계엄을 해제했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10시 23분께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인 새벽 4시 27분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 담화를 통해 해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10시 23분께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합동참모본부는 비상계엄에 투입됐던 병력이 새벽 4시 22분부로 원소속 부대로 복귀했다고 4시 30분 언론 공지를 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 직전에 계엄군이 철수했다. 특히 계엄 선포 직후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던 계엄군이 어느 부대 소속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일단 군 안팎의 소식통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예하 1공수특전여단과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서구에 주둔하고 있는 1공수특전여단은 국회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불과 수십 분 만에 국회로 진입할 수 있다. 이들은 차량과 헬기 등을 통해 국회로 이동했다. 특전사와 함께 서울·수도권 방위를 책임지는 수방사 35특수임무대대 소속 대원들도 계엄군으로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35특임대는 서울·수도권에서 테러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해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부대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하고 있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 진입 당시 일부는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했고, 방탄모와 마스크, 방탄조끼 등 완전 무장을 했다. K-1 기관단총으로 완전 무장을 했으며 실탄을 장착한 것으로 추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10시 23분께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윤 대통령은 계엄선포 직후 박안수(대장)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통상 계엄사령관은 군 서열 1위이며 계엄 업무를 관장하는 합참의장이 임명됐지만 이번에는 육군총장이 임명됐다. 박 계엄사령관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 추천으로 임명됐다. 계엄사령부는 국방부 영내에 설치됐다. 다만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여 분 만인 4일 새벽 1시 5분께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이에 따라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던 계엄군은 철수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 요구에 따라 국무회의를 열어 새벽 4시 27분께 계엄을 해제했다. 비상계엄에 투입됐던 전체 병력은 계엄 해제 발표에 앞서 4시 22분부로 원소속 부대로 복귀했다고 합참은 4시 30분 발표했다. 국방부 영내에 설치됐던 계엄사령부도 철수했다. 국방부는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선언 직전인 새벽 4시쯤 "국방부 본부 비상소집을 해제한다"라고 발표했다. kjw8619@newspim.com 2024-12-04 09:09
사진
어제밤 10시 계엄 전 국무회의 개최 [세종=뉴스핌] 정성훈 최영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국무총리 보고 절차를 패싱한거 아닌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4일 총리실,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 발표 직전인 밤 10시경 용산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회의에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소식이 전해진 4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4.12.04 yooksa@newspim.com 다만 해수부, 환경부, 공정위 등 일부 부처 장관은 세종이나 지방, 해외 일정 등으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리 국무회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 국무조정실 및 총리비서실 등에 확인 중이지만, 아직 공식 답변은 받지 못했다. 손영택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지금은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문자로 짧게 답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장관이 계엄령 선포 전과 후 열린 국무회의에 모두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 중 반대나 이견을 표시한 장관은 없었다"고 전했다. 윤대통령 주재의 일방적인 회의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에 반대의견을 표시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향후 큰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대통령실 수석보좌관이 일괄 사퇴의사를 표명했고, 내각도 총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제88조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 보통 각 부처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서울특별시장 등이 배석할 수 있다. 국무회의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다만 구성원이 동영상 및 음성이 동시에 송수신되는 장치가 갖춰진 서로 다른 장소에 출석해 진행하는 원격영상회의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아직까지 풀지 못한 의문은 국무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는지 여부다.  계엄이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해 행정·사법권을 군으로 이관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계엄 선포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소집해 총리가 참석했을 수는 있지만, 계엄 선포 절차 과정에서 총리에게 보고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해 간부들과 비상회의를 한 뒤 오전 2시 30분께 퇴청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새벽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바로 국무회의 통해 국회 요구 수용해 계엄 해제할 것. 다만 즉시 국무회의 소집했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 오는 대로 바로 계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2024.12.04 leehs@newspim.com 한편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10시 23분경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바 있다. 비상계엄 해제는 윤 대통령 담화문 발표 이후 6시간여 만이다. 비상계엄령 선포와 함께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발령되면서 전날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은 비상계엄 체계에 들어갔다. 이에 국회에 계엄군이 출동해 장악을 시도했다. 국회는 이날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켜 국회의원 190명 참석에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국회에 출동했던 계엄군도 철수했다. 비상계엄은 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건을 계기로 마지막 선포된 뒤 45년 만이다. jsh@newspim.com 2024-12-04 09:52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