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정부는 22일 농지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농지제도 개편을 추진했다.
- 관행적 임대차와 휴경은 농지은행이 중개해 제도권으로 편입한다.
- 고령농 농지는 매입·수탁해 청년농과 전업농에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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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농 농지 매입·수탁해 청년·전업농들에 공급
농지 임대차 비중 47%…30년 된 농지법도 손질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정부가 전국 농지 전수조사를 단순한 투기 적발 수단을 넘어 농지 소유·이용 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계기로 활용한다. 조사에서 확인된 관행적인 임대차와 휴경은 농지은행을 통해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고령농의 농지는 매입·수탁해 청년농과 전업농에게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그리는 구조개혁의 중심에는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이 있다. 개별 농민 사이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임대차를 농지은행이 중개하고 방치된 농지는 직접 관리·복구한다. 흩어진 우량농지는 집적·규모화하는 한편, 고령농의 농지 처분과 청년농의 농지 확보를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농지은행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 관행적 임대차 제도권으로…농지은행이 '공공 중개자'
2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농지 전수조사에서 파악한 소유·이용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농지제도 개편과 맞춤형 농지정책 수립에 활용할 계획이다.
전수조사는 당초 실제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을 노리고 농지를 취득한 투기 행위를 가려내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고령이나 질병으로 직접 농사짓기 어려워진 소유자가 이웃에게 농지를 빌려주거나, 농업인들이 편의상 서로 농지를 바꿔 경작하는 등 농촌의 관행적인 임대차도 대거 드러났다.
정부는 현행 농지법과 실제 농촌의 농지 이용 형태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판단한다. 국가데이터처 표본조사상 농지 임대차 비중이 47%에 달하지만, 현행 농지법은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농지 임대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인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현행 농지법의 임대차·휴경 요건이 변화한 농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1996년 제정된 농지법으로는 현재 상황을 충분히 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제정 이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농지법 전반을 재검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투기성 위반과 농촌 현실에서 비롯된 위반을 구분해 처리하기로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 영농계획을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에는 처분명령을 내린다. 농업법인이 농지를 취득해 부동산업을 영위하거나, 경매 등을 통해 농지 공유지분을 나눠 가진 뒤 시세차익을 노린 경우도 엄정 조치한다.
영농 의사 여부는 농지 취득 과정과 실제 경작 형태, 항공사진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판단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거짓·부정한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했는지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각종 정황을 종합해 행정처분을 내리고, 지방정부의 청문 과정에서 당사자의 소명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처분을 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상속·이농 농지나 고령농 소유 농지에서 발생한 임대차·휴경 위반에는 자진 정비와 정상화 기회를 준다. 소유자가 농지은행에 농지를 임대 위탁하면 기존 실경작자에게 우선 임대하고 처분을 유예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농지를 증여한 뒤 계속 농사짓거나 이웃에게 임대한 경우, 농업인끼리 서로 농지를 바꿔 경작하는 경우 등이 대상이다. 개인 간 임대차 관계를 끊는 대신 농지은행을 사이에 둔 공식적인 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은행에 위탁하면 기존 경작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기존 임대차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농지은행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임대차 관계로 전환해 주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미등기 상속 등으로 소유자가 불분명한 농지는 행정청이 대리 경작자를 지정하거나 재산세 납부자 등이 대표로 농지은행에 맡길 수 있도록 한다. 상속농지가 사인 간 임대차 허용 한도인 1헥타르(㏊)를 초과한 경우에는 초과분을 농지은행에 위탁하도록 안내·계도한다.
이는 전수조사로 임대차 사실이 드러난 뒤 토지주가 농지를 회수하면서 실제 농사짓던 임차농이 쫓겨나는 부작용을 막는 동시에, 그동안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던 임대차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조치다. 특별법 시행 이후 일정 기간 실경작자의 임차권을 보장하고 소유자의 장기 임대 위탁을 유도할 지원책도 검토한다.

◆ 고령농 땅 매입해 청년농에…농지 '세대 전환' 추진
농지은행의 역할은 임대차 중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농지를 생산성과 이용 상태에 따라 분류해 집적·규모화와 농업인 세대 전환에 활용할 계획이다.
우량농지는 농지은행의 공공 매입과 교환·분합을 통해 한데 모은다. 지금까지는 농지은행이 매입·임대 신청을 받은 농지를 개별적으로 처리했다면, 앞으로는 농지 DB를 활용해 인접 농지를 묶고 공동영농과 기계화가 가능한 규모로 재편한다.
맹지나 경사지처럼 경작 여건이 좋지 않은 농지는 농지은행이 관리권을 넘겨받아 경지 정비 등을 거쳐 다시 임대한다. 장기간 임야화돼 농지로 복구할 실익이 낮은 토지는 실제 이용 상태에 맞게 지목을 변경하고 농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경작이 어려운 저활용 농지는 태양광 등 대체소득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농사짓기 어려운 토지에서 영농을 병행해야 하는 영농형 태양광을 추진하는 게 적절한지를 놓고는 정부 내에서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맹지나 경사지에서 영농까지 병행하면서 태양광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일반 태양광으로 활용할지는 조금 더 숙의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전했다.

농촌 고령화에 따른 농지 이전도 촉진한다. 정부는 전수조사를 통해 상속·고령농의 농지 현황과 매도 의사를 파악한 뒤 매각을 원하는 농지를 농지은행이 적극적으로 사들이도록 할 계획이다.
고령농에게는 공공 매입과 임대 위탁, 농지연금, 농지이양은퇴직불 등을 통해 농지를 현금화할 수단을 제공한다. 농지은행이 매입하거나 위탁받은 농지는 복구·정비한 뒤 청년농과 귀농인에게 공급한다. 농촌에서 팔리지 않는 농지는 공공이 받아주고, 농지가 없어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에게 연결하는 구조다.
정부가 농지 거래절벽 해소를 위해 농지은행의 농지 매입과 농지연금 예산을 확대하려는 것도 이런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내년 정부안에 반영된 맞춤형 농지지원 예산은 올해 1조8077억원에서 2조2617억원으로 4540억원 늘었다. 농지연금 예산도 같은 기간 2766억원에서 3444억원으로 678억원 증가했다. 당정은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농지 매입·복구와 농지연금 예산을 추가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연금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지만 충분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현재 농지연금 가입을 기다리는 분들이 상당수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농지 가격 하락으로 농지은행의 매입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매입가격을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감정평가는 공시지가에 지가지수 변동분 등을 반영해 이뤄진다"며 "올해 농지은행의 매입가격이 지난해와 거의 변동이 없는 것을 보면 감정평가액에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특별법 연내 추진…정상화 기준·관리 역량이 관건
정부의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현행 농지법에는 관행적 임대차와 휴경 농지의 처분을 폭넓게 유예하거나 불법 전용 농지를 사후 추인할 근거가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행 농지법에는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위반사항에 대해 처분을 경감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따라서 특별조치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정은 올해 말까지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정상화 대상과 제외 기준, 농지은행 관리권 위탁, 임차인 보호, 불법 전용 사후 추인 등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내년 1분기 특별법을 시행하고 위반 유형별 세부 지침을 내놓은 뒤 내년 2분기에는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처분 유예 기간과 자진 정비 기간은 법안 마련 과정에서 확정한다. 농지 소유자가 원하는 만큼 무기한 처분을 미룰 수 있도록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처분을 무한정 유예한다면 법의 규율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법 제정 과정에서 현장 의견을 수렴해 적정한 유예기간을 설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에는 농지 위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전용 절차를 거치지 않은 농업·공공시설 등에 농지보전부담금을 부과한 뒤 합법화하는 내용도 담길 예정이다. 1988년 이후 38년 만에 불법 전용 농지 양성화를 추진하는 셈이다.
다만 정상화할 관행적 위반과 제재할 투기 행위를 가르는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농지은행이 급증할 임대·관리·매입 물량을 감당할 인력과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과제다. 위반 농지를 대규모로 양성화할 경우 성실하게 농지법을 지킨 소유자와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농지은행을 통한 임대차 정상화가 기존 위반을 덮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경작자의 권리 보호로 이어지려면 임대 기간과 계약 갱신, 소유자의 농지 회수 등 구체적인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한 농촌 현실을 농지법 개정과 농지은행 기능 강화로 연결한다면 30년간 이어진 농지 관리 체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반면 특별법 제정과 예산 확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장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한시적인 양성화에 그칠 우려도 제기된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21일 '농지 전수조사 추진 방향' 국회 간담회에서 "농지 전수조사는 농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도를 정비해 농업·농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투기 목적은 엄단하되 경미하고 관행적인 위반은 계도와 제도 개선을 통해 농지가 농지다움을 회복하고 정상 이용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