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정부가 21일 저PBR 상장사 겨냥 M&A 제도화와 저평가 명단 공개 방안을 논의했다.
- 상속·증여세 절감을 위한 낮은 주가 유지 관행은 약화되고, 인수제안 공개 의무·베어허그 도입으로 경영권 리스크가 커졌다.
- 행동주의 자금 유입 속에 특히 중견·중소 저PBR 기업이 지배구조 개편·M&A 압박의 주요 표적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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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국판 베어허그' 제도화, PBR 0.8배로 상속 증여세 의무
시장엔 행동주의 자금 유입…월가의 암살자' 파미 콰디르, 한국 진출
[서울=뉴스핌] 한기진 산업부장·부국장 = 오랫동안 일부 상장사에게 낮은 주가를 유도했다. 오너 일가의 상속·증여 부담을 줄여주고, 외부 경영개입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셈법이 곧 완전히 바뀐다. 정부가 M&A(인수합병)를 저평가 기업의 구조조정 수단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고, 시장에서는 국내외 행동주의 자금이 저PBR 종목을 새로운 사냥터로 지목하고 있다. 저평가는 이제 '할인'이 아니라 '경영권 리스크'로 읽히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 밸류업 1년…지수는 올랐는데 저평가 기업은 오히려 늘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주가누르기방지법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나온 '밸류업 1년 성적표'에 따르면 코스피 내 PBR 1배 미만 기업은 2025년 7월 567개에서 2026년 7월 603개로 36개 늘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3~4배 상승했지만, 장부가치에도 못 미치는 평가를 받는 기업 수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PBR 1배 미만의 기업수가 코스피에서 70%나 된다. 정부의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정상화와 밸류업 정책이 숫자만 놓고 보면 실패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들의 할인 폭이 특히 두드러진다.
DS투자증권이 추정한 2026년 예상 PBR은 롯데지주 0.50배, LG 0.47배, 하림지주 0.46배, 한국앤컴퍼니 0.44배, GS 0.39배, 동국홀딩스 0.18배 수준이다.
◆ 낮은 주가가 '절세 전략'이던 시대
이런 저평가가 오랫동안 방치돼 온 배경에는 상속·증여세 구조가 있다. 상장주식의 상속·증여 가액은 평가기준일 전후 주가를 토대로 산정된다. 주가가 낮을수록 오너 일가가 지분을 물려줄 때 과세표준도 함께 낮아지는 연결고리가 생긴다.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적극적인 IR보다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와 낮은 주가 방치에 무게를 둔 기업이 적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정부가 상속세 개편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낮은 주가를 통한 절세라는 셈법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이 바로 M&A다.

◆ 정부, '한국판 베어허그' 추진…인수 제안, 숨기기 어려워진다
금융위원회는 경영권 변경 목적의 인수 제안이 들어오면 이사회가 즉시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잠재적 인수자가 지배주주에게만 제안하고 이사회·일반주주를 배제한 채 물밑 협상을 진행할 수 있지만, 개편안은 제안 접수 사실과 인수가격, 가격 산정 근거, 자금 조달 방안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제안이 실제 인수 의사가 있는 '진지한 제안'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마련된다. 자금 조달의 구체성, 인수 목적의 정당성, 거래의 실현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25% 이상 지분을 취득하는 공개매수에서는 이사회가 특별위원회 구성이나 외부 전문가 평가 등 독립적 절차를 거쳐 찬성·반대·중립 의견과 가격의 공정성을 공시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는 저평가된 기업에 시장가격보다 높은 인수가격을 제시한 뒤 이를 공개해 이사회를 압박하는 이른바 '베어허그' 전략을 국내에서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 변화다.
저PBR 유니버스 726개 종목 중에서는 티와이홀딩스가 PBR 0.14배로 가장 낮았고, 무림SP·크리스탈신소재 0.16배, 유성기업·티케이케미칼 0.17배, 롯데하이마트 0.20배, 롯데쇼핑·동국홀딩스·한진이 각각 0.21배로 뒤를 이었고 상속증여 문제가 남아있는 중견기업으로 신도리코, 삼호개발이 각각 0.3배이다. 대원산업은 주주환원정책을 두고 기관투자자와 갈등을 겪고 있다.
◆ 행동주의 자금도 한국행…"저PBR은 가장 쉬운 표적"
제도 변화와 별개로, 시장의 플레이어도 바뀌고 있다. 과거 국내 행동주의 펀드는 배당 확대 요구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기업 분할·자산 매각·이사회 개편 등 경영 전반을 바꾸는 방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월가에서 공매도 투자자로 이름을 알렸던 파미 콰디르(Fahmi Quadir)가 행동주의 투자자로 한국 시장 진출을 추진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공매도로 기업의 약점을 찾아내던 투자자가 이제는 저평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PBR 0.3~0.5배 수준 기업이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많고, 현금은 있지만 자사주 소각·배당에는 소극적이다. 최대주주 지배력은 약한데 순환출자·계열사 구조는 복잡하고, 여기에 상속세 부담까지 커지면서 오너 일가의 방어 여력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특히 취약한 곳은 대기업보다 중견·중소 상장사다. 방어 수단과 대응 경험이 쌓인 대기업과 달리, 낮은 시가총액과 분산된 지분구조, 미흡한 IR은 행동주의 펀드가 선호하는 조건 그 자체다. 주주명부 관리조차 허술하거나 독립 사외이사 체계, 투자자 대응 시스템이 미비한 기업이라면 지분 5~10%만 확보돼도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 저PBR 명단 공개, 자산 재평가까지…압박은 다각도로
정부는 M&A 공시 제도 외에도 저평가 기업을 직접 겨냥한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동일 업종에서 PBR이 2개 반기 연속 하위 20%에 해당하는 기업을 4월과 10월마다 선정해 KRX 밸류업 홈페이지에 상시 공표하고, 종목명에 저PBR 표식을 붙이는 이른바 '네이밍 앤드 셰이밍' 방식이 제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업무보고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빠른 정책실행을 요구했다.
여기에 장기간 원가로 장부에 반영된 토지·부동산을 공정가치로 재평가하도록 유도하고, M&A 과정에서는 외부평가를 통해 공정가액을 산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신규 중복상장은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기존 중복상장은 공개매수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해소하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포함됐다. 국내 저PBR 기업을 향한 압박이 단순한 배당 확대 요구를 넘어, M&A 공시·자산가치 현실화·중복상장 해소로 동시에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 다음 표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결국 이 모든 변화가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다. 낮은 주가를 방치해서 얻는 이득(상속세 절감, 외부 개입으로부터의 자유)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인수 제안 공개 의무, 이사회의 설명 책임, 행동주의 자금의 표적화)는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여전히 "적대적 M&A는 대기업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에 가깝다. 방어 수단과 대응 경험이 쌓인 대기업보다, 낮은 시가총액과 허술한 IR·주주 대응 체계를 가진 중견·중소 상장사가 훨씬 취약하다.
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지 않으면, 외부 인수 제안과 행동주의 압박을 통해 자산과 사업 구조가 재평가되는 환경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주가를 방치하는 기업은, 결국 시장이 대신 바꾼다.
hkj7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