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유단이 12일 김순식 하사 유해를 가족에게 귀환시켰다.
- 2024년 10월 철원 817고지 발굴 유해를 올해 2월 신원 확인했다.
- 아들 김의영이 운영하는 가평 펜션에서 호국 영웅 행사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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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8일 전 금성에서 전사한 6사단 하사… 아들 펜션서 '마지막 귀향'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1953년 7월 '금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 고(故) 김순식 하사(현 계급 상병)의 유해가 74년 만에 아들이 운영하는 경기도 가평군 펜션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통해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24년 10월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원동면 세현리 무명 817고지 일대 전면 굴토 과정에서 수습한 유해의 신원을 올해 2월 김 하사로 최종 확인했다.
국유단은 2024년 9월 23일부터 11월 1일까지 육군 제7보병사단과 함께 철원 세현리 무명 817고지에서 전면 발굴을 실시해 총 7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이 지점은 6·25전쟁 기간 중공군 최후공세 당시 세 차례의 격전이 벌어진 전략 요충지로, 기록상 국군 전사·실종자가 270여 명에 이르는 곳이다.

김 하사의 유해는 같은 해 10월 8일 7사단 장병들이 9부 능선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어깨뼈와 갈비뼈가 노출된 상태로 처음 확인됐다. 국유단 전문 발굴팀은 이후 정밀 발굴을 통해 위팔뼈와 넙다리뼈 등 유해와 함께 M1 소총용 대검, 철제 숟가락, 플라스틱 단추 등 유품 70여 점을 추가로 수습했다. 김 하사는 올해 국유단이 신원을 확인한 여섯 번째 호국영웅으로,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 시작 이후 가족 품으로 돌아간 274번째 국군 전사자로 집계됐다.
1932년 8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 하사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18일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아내는 외아들을 임신 중이었고, 김 하사는 이후 국군 제6사단 7연대에 배치돼 중공군 최후공세 시 금성지구전투에 투입됐다.
그는 정전 발효를 불과 8일 앞둔 1953년 7월 19일 금성지구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적 포탄 파편이 온몸에 박히는 부상을 입고 20세 나이로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공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이 사후 추서됐으며, 김 하사가 몸담았던 2군단 예하 6개 사단(수도·3·5·6·8·11사단)은 중공군 5개 군 예하 15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하고 금성돌출부를 사수해 화천 수력발전소 방어와 휴전선 확정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김 하사의 신원 확인은 유전자가 열쇠가 됐다. 국유단 유가족 찾기 탐문관은 2020년 11월, 당시 67세였던 외아들 김의영 씨를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고, 분석을 거쳐 지난해부터 약 1년간 유해와 대조한 끝에 올해 2월 친자 관계를 확정했다.
유가족 뜻에 따라 이날 귀환 행사는 김 씨가 운영하는 가평군 소재 펜션 야외 행사장에서 열렸다. 김 씨는 "우리나라가 발전한 덕분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죽기 전에 유해라도 한번 안을 수 있어 다행이며, 국립묘지에 정중히 안장해 평안히 모시고 싶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김성환 국유단장 직무대리(육군 중령)는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고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한 고인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앞으로도 호국영웅의 유해를 끝까지 수습하고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등 역량을 집중해 남겨진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유단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해 친·외가 8촌 이내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를 이어가고 있으며, 전사자 신원이 확인될 경우 포상금 10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