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美·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는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전략적 패권 경쟁 관계인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충돌 양상이 엿보인다.
미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전쟁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미국은 애초 전쟁 시작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실리는 전부 전쟁을 지켜보고만 있는 중국이 챙기는 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이번 이란 공격에 앞서 '이란의 독재 타도', '인권 수호', '핵 위협 제거' 등을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전쟁 초반 초등학생 175명을 폭사시킨 비극적 참사는 미국의 전쟁 도발 명분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국제 여론이 좋지 않다. 특히 유럽의 전통 우방국들 부터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이번 전쟁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언론들조차 워싱턴이 '외톨이'로 전락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어떤 면에서 미국은 지금 명분도 실리도 잃은 채 중동이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이에비해 미중 패권 경쟁의 일방이자 전쟁의 또 다른 이해당사자 격인 중국은 전쟁에서 한발 비켜난 채, 국제 무대에서 '반전 평화 수호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전쟁 중단 요구와 함께 국제사회의 안정적인 질서 회복을 호소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어필하는 형국이다.

중국은 전쟁 초기부터 '일어나선 안 될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미국의 이란 공격이라는 무모한 군사 행동을 강하게 질타해 왔다. 설령 미국이 싸움에서 이겨 승전을 선언한다 해도, 반전을 주장해온 중국은 새로운 중동 평화 중재자로서 위상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4월 초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의 연기 과정은 두 강대국의 글로벌 역학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해달라고 중국에 요구했으나, 중국은 가당치 않은 소리라며 당장 전쟁을 중단하라고 직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연기됐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추호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2월 말 미국의 공격으로 미·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4월 1일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은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더 이상 달가운 회합의 자리가 아니었다.
중국이 얻을 강력한 이익이 수반된다면 모를까, 정상회담이 자칫 전쟁 주도자인 트럼프의 체면과 명분만 살려주는 들러리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회담 연기로 중국은 오히려 국제사회에 '반전 평화 수호국' 이미지를 부각하는 실리를 챙겼다는 관측이다.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은 전략적 패권 경쟁 관계인 미국과 중국의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접점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세계화 전략에 있어 대체 불가능한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란과의 협정을 통해 25년간 총 4,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에너지·무기 협력에서도 전략적 맹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막대한 전비를 들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분야에 걸쳐 이란의 대중국 의존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란에서 이대로 반미 정권의 기초가 굳어진다면 중동의 새로운 질서는 중국이 바라는 대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고, 포성이 그친 뒤에는 미국이 전쟁까지 불사하며 지배력을 강화하려 한 중동에서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입김이 강해지고 중국 경제 영토가 확장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는 동안 중국은 후방에서 느긋하게 전쟁의 손익계산서를 두드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포연이 걷히고 나면 싸운 자보다는 그저 지켜보던 자가 전리품을 거둬가는 '어부지리(漁夫之利)'의 상황이 될 수 있다. 평화의 주도권도 워싱턴에서 소리 없이 베이징으로 이동할지 모른다.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