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내 안에 있는 고독함을 꺼낼 때가 왔다고 느꼈어요."
배우 문상민은 영화 데뷔작 파반느를 처음 마주한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드디어 나에게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 중 문상민이 연기한 '경록'은 서툴고 불안정한 20대 청년이다. 문상민은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현재와 맞닿아 있는 감정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20대 중반이 되면 더 성숙해지고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줄 알았는데, 실제의 나는 너무 서툴렀다"며 "그런 부분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경록의 대사 '고민 있어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가 마치 내 넋두리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원작 속 경록은 말수가 적고 염세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에 대해 문상민은 "원작과 너무 다른 해석이 아닐까 고민도 했다"면서도 "좋아하면 좋다고 말하고, 슬프면 울고, 말이 빨라지기도 하는 평범한 20대 남자로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툴더라도 직관적이고 솔직하게 연기하자는 방향을 잡았다"며 "단순하지만 하나하나 진심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경록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 '불쌍하잖아요'라는 대사에 대해서도 해석을 더했다. 문상민은 "경록이 미정을 동정의 시선으로 본 적은 없었을 것"이라며 "어긋난 마음에서 튀어나온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심과 호감이 생기면 눈을 뗄 수 없고, 어느 순간부터 곁에 머물게 되는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지인으로부터 "대본 말투를 너 말투로 바꾼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문상민은 "그만큼 나와 닮아 있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웃었다.

문상민은 함께 연기한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고)아성 누나와 (변)요한 형이 없었다면 내 연기가 관객에게 납득됐을까 싶다"며 "두 분이 울타리처럼 감싸주는 걸 보며 난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고아성에 대해서는 "첫 리딩 때부터 후배 문상민이 아니라 경록 그 자체로 봐줬다"며 "연기를 주고받을 때 눈빛 하나로 반응해주고, 내 대사에 진심으로 감동해 주는 걸 느꼈다. 나를 빛나게 해주는 선배였다"고 깊은 감사를 전했다.
문상민은 여전히 고민이 많은 배우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는 "힘들 때 편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편"이라며 "그러다 보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지만, 그게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촬영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문상민은 LP바 앞, 전봇대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을 꼽았다.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아 애를 먹던 그에게 이종필 감독은 "시간은 충분하니 상민이의 생각이 끝나면 말해달라"며 묵묵히 기다려줬다고 한다.
문상민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안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정말 한참을 울었다.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았다. 마치 옆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쓸모없어진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완전히 배역에 동화됐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굉장히 생경한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신뢰 역시 큰 부담이자 동력이었다. 문상민은 "10년 넘게 준비한 작품에 아직 많이 보여주지 못한 배우인 나를 믿고 캐스팅해주셨다"며 "그 책임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지금처럼 하면 된다. 네 진심을 안다'고 해주셨다. 그 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는 아이슬란드 촬영 분량을 꼽았다. 그는 "'사랑해'라는 대사를 하고 난 뒤의 얼굴이 정말 경록의 얼굴 같았다"며 "큰 스크린에서 보면 더 잘 전해질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 촬영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모든 스케줄을 직접 짜셨고, 세 명(이종필 감독, 고아성, 문상민)이 촬영하다 보니 오히려 미정과 둘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 덕분에 더 잘 담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겨울 분량 촬영 후 3개월 만에 다시 찍은 버스 신에 대해서는 "경록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여러 번 시도한 장면"이라며 "리딩 때부터 특히 잘 나왔던 장면"이라고 회상했다.

최근 관객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샤브샤브 집에서 옆 테이블 남자 손님이 두 손을 모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갯짓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파반느 너무 좋았다'고 말해주셨다"며 "그 말에 울컥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문상민은 "20대 중반의 문상민 얼굴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 더 소중하다"며 "누구에게나 뜨거운 청춘의 시기가 있었다는 걸, 있는 그대로 천천히 느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작품,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얼굴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며 "로맨틱 코미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장르"라고 밝혔다.
'2000년대생 남자 배우 붐' 속에서 자신의 강점을 묻자, 문상민은 "아직 잘 모르겠다"며 "굳이 말하자면 키와 슬렌더한 이미지, 청순함 정도?"라며 웃었다. 이어 "조금 더 도전적으로, 기세를 올려 공백을 채워가고 싶다. 작품뿐 아니라 '사람 문상민'으로도 대중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moonddo0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