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투어는 사양·대신 등번호 14번은 영구결번
[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한국 여자배구를 대표해온 이름, 양효진(현대건설)이 19시즌에 걸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숫자로 남은 그의 발자취는 한 포지션의 경계를 넘어선다. 통산 8354득점, 6255공격 득점, 1735블로킹, 364서브 에이스. '미들블로커'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압도적인 궤적이다.
현대건설은 3일 "양효진이 오랜 고민 끝에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19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라며 양효진의 은퇴 결정을 알렸다.

예고는 있었다. 지난 1월 25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올스타전 기자회견에서 그는 "조만간 결정할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마흔까지 하라는 말도 듣지만, 그러려면 테이핑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시즌 전 검진에서 무릎에 물이 찬 사실을 털어놓으며 고민의 무게를 전했다.
은퇴식은 8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리는 페퍼저축은행과의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에서 진행된다. 등번호 14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다. 이는 단순한 예우를 넘어, 구단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숫자를 봉인하는 선언이다.
2007-2008시즌 장신 센터 유망주로 데뷔한 그는 한 번도 유니폼 색을 바꾸지 않았다. 564경기, 19시즌을 오롯이 한 팀에서 보낸 '원클럽맨'의 무게다.

기록은 한국 프로배구의 지형을 바꿨다. 남녀부 통틀어 V리그 최초 8000득점, 6000공격 득점 돌파. 7500·8000득점, 6000공격 득점은 언제나 "역대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했다. 여자부 통산 득점 2위 박정아(페퍼·6407득점)와는 약 2000점 차, 남자부 최다 득점자인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7353득점)보다도 1000점 이상 앞선 수치다. 미들블로커가 공격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공식을 몸소 증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의 이름을 단지 '득점력이 좋은 센터'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효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여전히 '블로킹'이다. 시즌마다 100개 안팎의 블로킹을 꾸준히 생산하며 11년 연속 블로킹 1위라는 기이할 정도의 연속성을 보여줬고, 남녀부 통틀어 최초로 1200, 1400, 1600블로킹의 벽을 차례로 넘어섰다.
이번 시즌까지 현재 그는 1735개의 블로킹으로 부문 2위 정대영(은퇴)의 1228블로킹과 현역 선수 중 두 번째인 김수지(흥국생명)의 1078블로킹과 각각 507개, 657개 차이를 보인다. 또 남자부 최고 기록 보유자인 신영석(한국전력)의 1398블로킹보다 337개가 많다. 꾸준함과 높이가 동시에 만든 벽이었다.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올스타 17회, 베스트7 12회. '리빙 레전드'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시즌 전 미디어데이에서도, 봄 배구의 긴장감이 극에 달한 3월 코트에서도 그의 이름은 늘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36세의 이번 시즌에도 그는 건재했다. 2024-2025시즌 종료 후 총액 8억원(연봉 5억·옵션 3억)에 계약한 뒤 32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408득점(경기당 12.7점), 세트당 블로킹 0.754개를 기록했다. 득점 10위, 블로킹 2위. 여전히 최상위권 기량이었기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 크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한국 배구사의 중심에 있었다. 2012 런던, 2020 도쿄(2021 개최)를 거치며 올림픽 4강 신화를 함께했다. 세계적 높이를 자랑하는 강호들을 상대로도 그의 블로킹과 속공은 밀리지 않았다. 리그에서 다져온 경쟁력이 국제무대 성취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정작 은퇴를 선언한 그의 입은 겸손했다. 그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과 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구단에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남은 시즌 마지막 순간까지 현대건설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양효진은 끝까지 팀을 위한 선택도 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4-2025시즌 김연경이 했던 것처럼 '은퇴 투어' 추진을 검토했다. 하지만 양효진은 소속팀이 현재 1위 도로공사와 승점 2점 차로 2위를 유지하고 있기에 순위 싸움에 집중하고 싶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이제 V리그는 한 시대를 상징한 미들블로커를 떠나보낸다. 그러나 양효진의 기록은 후배 센터들의 목표가 되고, 그의 경기 장면은 반복 재생되는 교과서로 남을 것이다. 코트를 떠나도, 등번호 14번이 상징한 시간은 오래도록 한국 배구의 중심에 머문다.
wcn050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