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사라졌던 영웅이 LIV 골프에서 부활하자, 반세기 전설의 이름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앤서니 김(40·미국)의 16년 만의 우승 뒤에는, 그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 한 사람의 철썩같은 믿음이 있었다. 바로 LIV 골프의 설계자인 '백상어' 그렉 노먼(71·호주)이다.
노먼은 15일 호주 애들레이드 대회가 끝난 직후 호주 골프다이제스트와 인터뷰를 갖고 "이건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이다. 나도 마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기분"이라고 감동을 전했다.

그는 "앤서니의 눈에서 '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보았다. 잘못된 결정으로 묻혀 있던 천부적인 재능이 신뢰와 자신감을 통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PGA 투어에서 사라졌던 천재를 끝까지 붙든 사람이 누구였는지, 우승 직후 인터뷰로 전 세계 골프 팬들이 다시 확인한 셈이다.
앤서니 김이 2024년 4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트럼프 도랄에서 열린 LIV 골프 마이애미를 통해 12년 만에 프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그의 재기는 무모한 도전 또는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그는 애들레이드에서 욘 람(스페인)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8년 라이더컵을 뒤흔들던 그가 약물과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딛고 다시 정상에 선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LIV 출범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먼은 2022년 LIV 골프를 출범시키면서 골프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앤서니 김을 떠올렸다. 영입 의사를 꾸준히 전했지만, 앤서니 김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노먼은 2년여 동안 연락을 이어갔다.
앤서니 김의 마음을 돌린 건 골프가 아닌 가족이었다. 골프를 전혀 몰랐던 아내 에밀리가 "골프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 앤서니 김은 직접 아내의 스윙을 가르치면서 골프에 대한 열정도 다시 살아났다. 노먼은 에밀리와 딸 벨라를 곁에 둔 그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방황에서 벗어나 삶의 안정감을 찾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에밀리는 그의 안식처였고, 딸 벨라는 그가 최고의 부모이자 가장임을 증명하게 만드는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전했다.

복귀 협상 과정에서 앤서니 김은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에이전트를 두지 않았다. 그는 오직 노먼과 직접 소통하기를 원했고, 노먼 역시 그를 설득하기 위해 수시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골프닷컴과 영국 매체들은 "노먼이 2024년 앤서니와 LIV 계약을 직접 했다"라고 전하며, 두 사람이 1대1로 계약 구조를 짰다고 전했다.
현실적인 난관도 있었다. 과거 부상으로 은퇴하며 수령한 1000만~2000만 달러의 부상 보험금은 프로 복귀 시 반환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PGA 투어는 성적 외 별도 보장이 없었지만, LIV 골프는 계약금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노먼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패키지를 제시하며, 앤서니 김이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문제는 12년 공백으로 인한 실전 감각이었다. 2024년 시즌 중반 와일드카드로 LIV에 합류한 첫 해 성적은 참담했다. 지난해까지 두 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돌았고, 강등 위기까지 겪었다. 그럼에도 노먼은 "이건 1000마일 여정의 첫 걸음"이라며 흔들리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매체 벙커드는 이런 노먼을 두고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한 자랑스러운 아빠(proud dad)"라고 묘사했다.
앤서니 김은 노먼의 신뢰에 결과로 답했다. LIV 시드를 잃었지만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에서 상위권 성적으로 감각을 되찾았고, 지난달 LIV 골프 프로모션(승강전)에서 3위를 차지하며 2026 시즌 출전권을 자력으로 되찾았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뒤, 노먼의 고국 호주에서 16년 만의 우승을 완성했다.
우승 뒤 인터뷰에서 앤서니 김은 "노먼이 '너 자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내가 '믿는다'고 답하자, 그는 '나도 너를 믿는다'고 했다.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
zangpab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