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오는 8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는 정권 경쟁을 넘어 전후 일본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일본은 평화헌법이라는 전후 체제의 마지막 안전핀을 풀 수 있는 문턱에 선다.
물론 집권 자민당이 단독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연립 파트너인 일본유신회를 더해 개헌 발의선인 310석(전체 465석의 3분의 2)을 넘길 경우다. 이 숫자는 단순한 의석 수가 아니라, 일본 정치가 지난 80년간 제도적으로 걸어두었던 브레이크를 해제하는 임계점이다.
그동안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는 '전쟁 포기, 전력 및 교전권 부인'을 명시한 제9조의 개정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관통하는 진짜 변화는 그보다 훨씬 더 민감한 곳, 바로 '핵'에 닿아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등장은 그 상징적 신호탄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한 보수 강경파 정치인인 그는 일본 정계에서 드물게 핵무장 논의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온 인물이다.
![]() |
과거라면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할 발언이었지만, 이제는 핵무장 논의가 총리의 입을 통해 일본 정치의 수면 위로 부상했다. 물론 일본이 당장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기술적·외교적 장벽도 높고, 피폭국이라는 입장에서 국민적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방향'이다. 일본 사회가 핵이라는 단어 자체를 더 이상 완전한 금기로 두지 않게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일본은 적기지 공격 능력을 공식화했고, 방위비를 대폭 증액했으며, 미일 확장억제 강화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핵 공유에 가까운 논의도 물밑에서 이어가고 있다.
다카이치의 핵무장 발언은 돌출이 아니라, 이런 누적된 변화가 정치 언어의 형태를 취해 표면 위로 떠오른 결과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대외적인 안보 환경의 급변과 궤를 같이한다. 북핵 위협의 고도화와 중국의 군사적 팽창,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우선주의 확산에 따른 '미국 핵우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일본 보수층을 자극하고 있다.
공명당과 같은 전통적인 평화주의 파트너의 견제도 사라진 마당에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둘 경우 일본 안보 정책의 '우클릭'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의 핵 논의 공론화는 동북아시아 안보 질서의 도미노를 건드리는 일이다. 일본이 '핵무장이 가능한 국가'로 진입하는 순간, 한국 역시 기존의 안보 선택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북핵 억제라는 공통의 목표가 자칫 역내 핵 경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총선은 일본이 전쟁을 포기한 '전후 국가'라는 옷을 벗고,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로 진화할 것인지를 가늠할 분기점이다. 일본의 핵무장은 아직 현실이 아니지만, 그 말을 공개적으로 꺼낼 수 있게 만든 정치적 토대는 이미 다져졌다.
'310'이라는 숫자는 아직 가정이지만, 그 문턱 너머에서 우리가 마주할 일본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일 가능성이 높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