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최근 K팝 팬덤의 응원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과거 화려한 명품 선물과 억 단위의 서포트가 팬덤의 위상을 증명하는 척도였다면, 이제는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실천하는 기부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단순한 물질적 공세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팬문화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일차적인 배경에는 기획사들의 정책 변화가 있다. 하이브, JYP, SM 등 대형 기획사를 필두로 상당수 아이돌 소속사들이 '팬 서포트 및 선물 수령 금지' 방침을 내놓았다. 팬들 간의 과도한 경쟁이 아티스트에게 부담을 주고, 고가의 선물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선물을 주고 싶어도 전달할 길이 막힌 팬들은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사회에 기여하는 선한 인물로 기억되길 바라는' 팬심이 사회적 공헌이라는 출구로 이어진 셈이다.
팬덤 기부는 이제 일회성 성금 전달을 넘어 보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방탄소년단 팬덤의 움직임이 자주 언급된다. 팬들은 다멤버들의 생일이나 데뷔일을 기념해 도시 숲 조성, 환경 보호 캠페인 등 장기적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방탄소년단이 참여한 유니세프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 취지에 공감해 아동 폭력 근절을 위한 기부에도 자발적으로 동참해왔다. 단발성 후원이 아닌, 아티스트의 메시지와 가치를 응원 방식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팬덤 기부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는다.
임영웅의 팬덤 '영웅시대' 역시 팬덤 기부 문화를 상징하는 사례로 꼽힌다. 영웅시대는 매년 임영웅의 생일과 데뷔일 등을 계기로 소아암·백혈병 환아 지원, 수해 이웃 돕기, 취약계층 후원 등에 꾸준히 성금을 기탁해왔다. 누적 기부액이 수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기부하는 팬덤'의 대표적 사례로 여러 차례 조명됐다.
최근에는 아티스트의 평소 관심사나 가치관에 맞춘 '맞춤형 기부'도 확산되는 추세다. 유기동물 보호에 관심을 보여온 가수의 생일에 맞춰 팬들이 보호소에 사료나 물품을 전달하거나, 독서 습관으로 알려진 아이돌의 이름으로 도서관이나 복지시설에 책을 기증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응원을 넘어, 아티스트의 철학을 팬들이 함께 실천한다는 점에서 팬과 가수 간의 유대감을 한층 강화하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기부 응원의 가장 큰 특징은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서포트 문화에서는 금액, 규모, 화려함이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됐다. 반면 기부 응원은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취지와 의미에 초점이 맞춰진다. 소액 참여도 가능하고, 팬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여 장벽도 낮다.
엔터업계에서는 이를 K팝 팬덤 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변화로 분석한다. 과거의 팬덤이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주체였다면, 지금의 팬덤은 아티스트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파트너로 진화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기부 응원'은 아티스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가수에 그 팬"이라는 대중의 찬사는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구축하며, 이는 다시 팬덤의 자부심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유명 기획사 관계자는 뉴스핌을 통해 "과거 서포트 문화가 팬과 아티스트의 애정 표현으로 기능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금액이나 규모가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선물·서포트 제한은 팬문화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응원의 방향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부 응원은 팬들의 진심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부담이 적은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moonddo0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