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안개·GPS 끊긴 도로
레벨4 자율차, K-City에서 '실전 연습' 중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지금은 자동차 운전대에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연구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쏠라티 승합차가 부드럽게 커브를 돌았다. 사람의 두 손은 자유로웠고, 차는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도로를 나아갔다. 창 밖으로는 실제 도심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인공 건물이 스쳐 지나갔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TS)이 만든 자율주행실험도시 'K-City'다.
2018년 말 문을 연 국내 최대 자율주행차 테스트베드로,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15만㎡ 규모다. 처음엔 33만㎡에서 시작했지만 더 다양한 도로와 환경이 필요하다는 업계 요구를 수용하며 점차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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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ty 내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쏠라티 승합차가 운전자의 조향장치 조작 없이 스스로 운전하고 있다. [사진=정영희 기자] |
◆ 여의도 3분의 1 크기 땅, 자율차만을 위한 도시가 되다
지난 4일 K-City에 방문해 처음 들어선 곳은 통합 관제센터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에는 K-City 곳곳을 비추는 CCTV 화면과 지도가 동시에 떠 있었다. 특정 차량을 클릭하자 지도 위에서 차량 위치와 속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김민성 K-City연구처 선임연구원은 "CCTV가 100대 넘게 있어 음영 구역 없이 차를 추적할 수 있고, C-ITS(차량·인프라 간 통신) 시스템을 통해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알림이 뜬다"며 "차가 갑자기 멈추거나, 들어가선 안 될 구역으로 진입하면 관제센터가 바로 알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K-City의 실험 환경은 크게 세 단계로 고도화돼 왔다. 1단계(2016~2018년)에는 자동차전용도로, 도심, 교외, 스쿨존, 주차시설 등을 실제 규격과 똑같이 만들어 레벨3 자율주행 기본 주행을 평가하는 데 집중했다. 2단계(2019~2022년)에선 비·안개 같은 악천후, GPS 차단·통신 교란, 무단횡단·끼어들기 같은 교통 혼잡 상황을 재현했다. 이른바 '가혹 조건'에서 레벨4 기술을 시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보완했다.
올해 11월 마무리된 3단계(2022~2025년)는 입체교차로, 버스·자전거 전용도로, 골목길과 램프, 복잡한 도심 교차로까지 추가해 레벨4 자율차 실증과 공공서비스 상용화를 염두에 둔 고도화 단계다. 이용 실적도 빠르게 쌓였다. 2019년 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총 199개 기관이 K-City를 이용했다. 누적 사용 횟수는 7071회, 사용 시간은 4만612시간에 달한다. 국토부의 무상 지원 덕에 중소·벤처기업에 돌아간 경제적 지원 효과만 144억원 수준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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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방문한 K-City 내 통합 관제센터 대형 모니터에선 실험 중인 전체 차량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정영희 기자] |
자율주행미래혁신센터는 이 테스트베드를 뒷받침하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2층 규모의 건물 안에는 보안시설과 공용 정비고, 사무실, 회의실 등이 있다. 현재 부품·플랫폼·완성차·보안 솔루션 등 다양한 분야의 12개 기업이 입주한 상황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일부 중견·대기업도 함께 입주해 협업 중이지만, 중견기업은 반드시 중소기업과 손잡고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며 "한 층 전체를 쓰고 싶다는 요구가 많을 정도로 공간이 모자라 확장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비·안개·GPS 재밍까지…실제보다 더 험한 환경 재현
생활환경도로 구간을 지나 차량이 향한 곳은 K-City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기상환경재현 시설이었다. 왕복 4차선 도로 위에 길이 300m 터널형 실험 공간을 얹어놓은 구조다. 천장과 측면에는 46개의 인공 강우 모듈이 설치돼 시간당 10~50㎜, 최대 60㎜ 수준의 폭우를 쏟아낼 수 있고 양옆에는 안개 분사 장치가 줄지어 서 있다. 2022년 완공 이후 센서 신뢰도 검증 시험 197건을 수행했다.
동절기 동파 우려 때문에 이 날은 강우 대신 안개만 체험했다. 포그 머신이 가동되자 터널 안은 금세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찼다. 30초도 안 돼서 카메라 화면이 점차 흐려졌다. 또 ▲강우 강도에 따른 라이다 위치와 정밀도 오차 ▲안개 시정거리 30m 이하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라이다가 물체를 탐지하는 최단 거리 ▲포인트 클라우드(3D 공간에서 객체나 환경의 형태를 나타내기 위해 수집된 수많은 점들의 집합)에 생기는 노이즈의 AI(인공지능) 제거 정도 등을 시험한다.
이상현 K-City연구처 선임연구원은 "실제 안개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특수 오일을 250도로 가열해 분사하는 방식"이라며 "기술 수준이 올라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관련 시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GPS 재밍(수신기가 위성신호를 수신하지 못하게 해 신호가 끊기거나 왜곡되는 현상) 환경을 재현한 공간도 있다. 터널 내부에서 강한 잡음을 쏴서 도심 주행에서 자율차가 겪을 법한 최악의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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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ty 기상환경재현 시설에선 안개 분사 장치를 활용해 기상 상황에 따른 자율차 대응 방식도 실험할 수 있다. [사진=정영희 기자] |
이 연구원은 "예전에는 이런 구간에 들어가면 차가 못 움직이는 사례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라이다·카메라·자기 센서 기반으로 지도를 만들고 자체 위치를 추적하는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GPS 재밍 때문에 주행을 못하는 차량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K-City는 해외 테스트베드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 M-City, 영국 MIRA, 네덜란드 TNO 등과 국제 협력체계를 구축해 레벨4 자율주행 기술 검증과 상호 시험 결과 공유를 이어왔다. 이를 기반으로 약 1140억원 규모의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 중소·벤처기업이 국내에서 기술을 검증한 뒤 해외 실증으로 이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다.
TS 관계자는 "K-City는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레벨4 시대로 향하는 국내 자율주행 산업의 현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라며 "정부 예산으로 운영비를 지원받는 공공 테스트베드이면서, 동시에 수십 개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이 밤낮으로 드나드는 '실전 연습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