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 포함 지정학적 위기
10년 전 5억달러에서 80억달러로
미국에서도 뭉칫돈 유입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지난 2021년 스포티파이 창업자 다니엘 에크가 유럽 방산 기술 스타트업 헬싱에 1억달러 이상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유럽 음악가들과 이용자들은 그를 전쟁에 미친 인물이라고 몰아세웠고 스포티파이 보이콧 운동까지 벌였다.
4년이 흐른 지금 유럽 방산 섹터는 투자자들 사이에 속칭 '핫플'로 부상했고, 특히 IT 기업가들의 베팅이 집중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후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전쟁,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 관계의 균열, 중국을 둘러싼 긴장 고조 등 굵직한 지정학적 악재가 이어지면서 방산주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달라졌다.
과거 순수 상업용 기술 개발에 몰두하던 창업자들이 이제 방위, 보안 기술 개발과 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스웨덴의 한 창업가 칼 로산더는 신문과 인터뷰에서 "과거 방산주 투자는 음란물 사이트보다 더 부정적으로 여겨졌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 |
| [우크라이나 로이=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패트리엇 방공시스템의 모습. 장소가 어디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2025.07.17. ihjang67@newspim.com |
27년간 팟캐스트와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최근 드론 요격기 개발에 뛰어든 그는 "처음에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지만 이제 유럽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포옹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지역 방산 스타트업에 몰리는 자금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다. 시장 조사 업체 딜룸닷컴과 나토 투자기금(NATO Investment Fund)에 따르면 2025년 유럽 내 방위, 보안, 회복력에 관한 스타트업 투자액이 80억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10년 전인 2015년 5억달러에도 못 미쳤던 투자액이 10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해당 분야의 투자에는 테러와 사이버 공격, 팬데믹 등 위기대응력 강화 프로젝트가 포함된다.
미국 벤처 자본도 유럽 방산 섹터로 몰리고 있다. 2022년 이후 유럽 방산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에 미국은 자국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은 이미 팔란티어(PLTR)와 안두릴 등 안보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며 방위산업과 벤처의 결합 모델을 구축했지만 유럽은 여전히 국가별 예산 분산과 조달 절차 차이로 성장 속도가 더디다.
헬싱 공동 창업자 토스텐 라일은 "런던의 한 국방 기술 행사에서 5년 전만 해도 유럽 벤처캐피탈로부터 방산 자금을 조달하기란 불가능했다"며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토 회원국들은 올해 국방비를 두 배 이상 확대하기로 합의했고, 투자자들은 이를 시장의 구조적 기회로 보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이 유럽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데 따라 유럽의 기술 창업자들은 미국의 보호막이 약화되고 있고, 유럽이 자신들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독일 투자자 미하엘 왁스는 "트럼프 2기 개막 이후 유럽 내부적인 분위기가 예전과 전혀 다르다"고 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의 엔지니어 에릭 슬레싱거는 2022년 러시아 침공 직후 유럽 방위 투자자 네트워크(European Defense Investor Network)를 창설하고 방산 스타트업을 연결했다. 그는 이제 두뇌가 명석한 2세대, 3세대 창업자들이 유럽 안보를 위한 기업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에스토니아 기업가 스템 탐키비는 "방산 스타트업 투자에는 여전히 윤리적 논란이 뒤따르지만 지금의 방산 스타트업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념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투자 자금 유입을 가로막았던 유럽의 규제 장벽도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독일 투자자 겸 귀족 출신인 잔네트 추 퓌르스텐베르크는 2021년 자산운용사 규제 때문에 헬싱에 기관 자금 대신 개인 자금을 투자해야 했다.
잔네트는 현재 글로벌 벤처 기업 제너럴 카탈리스트의 전무로 활동하며 유럽 정부에 방산 혁신의 필요성을 적극 설득하고 있다.
또 다른 투자자 찰스 에벌리 본 제크세이는 조부모가 2차 대전의 포탄 세례를 겪은 기억을 계승하며 우크라이나 방산 스타트업 스워머(Swarmer)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지원 중이다. 그는 "방산 기술은 주권 수호의 수단이자 유럽이 다시 기술 패권을 되찾을 기회"라고 말한다.
국내외 자금이 밀물을 이루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유럽 방산 스타트업의 자금 규모가 1조달러 이상 필요한 안보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유럽에는 미국 펜타곤처럼 대규모 단일 발주 기관이 없어 신생 기업의 성장이 제한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