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매일이 살얼음판이죠 뭐. 임원들은 매일 현장으로 출근해서 점검, 또 점검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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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중기부 정영희 기자 |
요즘 건설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항상 비슷한 말이 나온다. 업계가 어렵다는 하소연은 늘 있었지만, 최근엔 조금 다르다. '울상'이 아니라 '절망'에 가깝다.
안타까운 건 이게 엄살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상황이 나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총생산에 의하면 올 2분기 건설투자(잠정치)는 전년 동기 대비 11.4% 줄었다. 지난해 2분기부터 쭉 감소세를 보이며 침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간 건축공사를 중심으로 투자 시장이 얼어붙더니 올 상반기에는 정치적 이슈로 공공공사까지 감소하면서 부진이 심화됐다.
일할 사람도 없다. 지난달 건설업 취업자는 전월 대비 8만4000명 줄면서 17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장은 계속 나이 들고 있다. 지난해 건설근로자공제회의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 결과 건설근로자의 진입 연령은 평균 39.4세로, 20~30대 청년층의 유입이 크게 부족하다.
한국건설인정책연구원이 대학생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대학생의 19%만이 '건설 분야로 취업할 생각'이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지난해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 취업자 379만여 명 중 건설산업 종사자는 4%(23만여 명) 수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그간 건설업계를 겨냥해 매서운 채찍을 휘둘렀다. 잇따른 안전사고에 시공사에는 '미필적 고의 살인'을 저지르는 회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건설 면허 취소 가능성도 수면 위로 떠오르며 아예 수주를 중단한 회사가 등장했다.
근로자 사망사고 발생 시 시공사가 안전 의무를 소홀히 했음이 드러나면 매출액의 최대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1년 이하의 영업정지, 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건설안전특별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대형 건설사도 원가율이 100%에 육박할 만큼 재정 상태가 팍팍한 업계에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도 당연히 알고 있다. 현장에서의 사고는 변명의 여지 없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는 비극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항상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안전 관련 비용을 확대하고 근로자 교육에 더욱 철저히 나서며 점검에 심혈을 기울인다.
근본적 해답은 아예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참 불편한 진실이다. 처음부터 사고를 막으려면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착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고, 무조건 저렴한 가격에 수주하려는 관행을 막아야 한다. AI(인공지능)나 로봇이 위험한 공종을 대체하는 '스마트 건설' 기술 발전도 필요하다. 이런 개혁을 하려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회사 한두 곳의 선제적 노력으론 어림없다.
건설업계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당시 "건설 안전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며 "장기 공사의 기간 연장과 추가비용 지급 근거 법제화를 통해 적정 공사비 확보도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지만 취임 5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의 요구사항 중 정부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 건 하나도 없다.
공기와 공사비는 여전하다. 돌관 공사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진행된다. 스마트건설도 다르지 않다. 기술혁신이 곧 생존이라는 걸 업계가 모르는 게 아니다. 자동화나 AI, BIM(건설정보모델링) 등을 도입하려면 초기 투자 비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 돈은 대기업도 버거운 수준이다. 중소 건설사들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 개발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예산 지원에는 인색한 정부의 행보가 모순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건설 경쟁력 강화로 '건설 강국' 중흥에 힘쓰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지만, 건설업계는 지금 이와 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가 기반 산업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쇠도 너무 두드리면 부러지기 마련이다. 진정 '건설업 혁신'을 원한다면 혼만 내지 말고 최소한의 당근도 함께 줘야 한다. 예산 지원이든 제도적 유연성이든, 업계가 숨 쉴 틈을 줘야 한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