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모든 문제점을 검토해 개선해야 할 점은 개선하겠다"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범석 우아한형제들 대표의 대답이다. 질문은 달랐지만 대답은 전부 같았다. "말씀해주신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정확하게 살펴보고 추후에 따로 공유드리겠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개선하겠다".
겉으로는 진지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다시 말해 "이해는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 "추후에 공유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답할 수 없다", "'부족하다면' 고치겠다"는 식이다.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거나 해결 의지를 드러내기보다는 준비된 모범 답안을 돌려 말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마치 '국감장에서 빠져나가는 법'을 적어놓은 매뉴얼을 암기해 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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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조민교 기자 |
2년째 한국어가 미숙한 대표가 국감에 출두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국감을 앞두고 선임된 피터 얀 반데피트 대표는 아예 한국어를 하지 못해 국회의원 질의 후 통역을 거쳐 답변해야 했다. 그마저도 정해진 시간이 짧아 말을 시작하자마자 끊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범석 대표 또한 한국어가 미숙하다며 김용석 전무를 대동해 국감장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1991년, 9~10살 무렵 터키로 이주했다는 해외 인터뷰를 고려하면 '한국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쿠팡 김범석 의장은 2019년과 2021년에 이어 올해 1월 열린 '쿠팡 택배 노동자 근로조건 개선 청문회'에도 불참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국회 정무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증인으로 채택했음에도 해외 체류를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통보했다. 얼마 전 국감장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오열했던 문지석 검사의 태도와는 극명히 대비된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김 의장이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조만호 무신사 의장 역시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끝내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나마 국감장에 출석한 일부 의미 있는 답변을 내놓은 대표도 있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연륙도(다리로 연결된 섬) 거주 고객에게 부과하던 추가 배송비를 오는 11월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질의에도 아는 범위 안에서 성실히 답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종철 쿠팡 CFS 대표 역시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지급 기준 변경 논란과 관련해 제도를 원래대로 복구하겠다고 답했다. 문제점을 인정하고 지적을 받으면 고쳐 나가겠다는 태도로, 국정감사가 우리 사회에서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와 국민이 바란 것은 단순히 자리에 앉아 있는 형식이 아니었다. 문제를 직시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는 책임 있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번 국감은 유통업계 수장들의 리더십 부재를 오히려 낱낱이 드러낸 자리가 되고 말았다.
기업을 대표해 국감장에 출석하는 경영인이라면 최소한 두 가지 중 하나는 해야 한다. 지적받은 문제의 원인을 국민 앞에 명확히 설명하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개선 방안을 그 자리에서 밝혀야 한다. 국회 또한 단순한 질의·응답에 그치지 않고 기업이 책임 있는 행동을 이행하도록 실질적인 후속 조치와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감이 또다시 보여주기식 자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로잡는 진짜 통로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mky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