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장남…지난해 말 수석부회장 승진 후 광폭 행보
"미국에서 미래를"...빌 게이츠·팔란티어 CEO 등과 회동
HD현대, 2025년 1Q '분기 기준' 최대 영업이익 달성
남은 과제는 경영권 승계…오너 경영 시대 시작 시점은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과 대내외 극도의 불확실성으로 주요 기업들이 '위기'로 느끼는 현시점에서 순풍을 맞아 쾌속 질주 중인 재계 그룹이 있다. 바로 HD현대다.
조선업을 주력으로 에너지, 건설기계 사업을 영위하는 HD현대의 미래 청사진의 '바로미터'는 바로 정기선 수석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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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준 이사장의 장남…지난해 말 수석부회장 승진 후 광폭 행보
1982년생인 정 수석부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사촌 관계다.
대일외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졸업 후 당시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지만 곧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마치고 크레디트스위스,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현대중공업에 복귀해 그룹 실무를 익혔고, 2018년 현대글로벌서비스(현재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 현대중공업 선박해양 영업본부 대표를 맡았다.
2021년부터 HD현대 대표이사 사장,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을, 2023년부터는 HD현대 및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1년 만인 지난해 1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시기와 맞물려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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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이하 다보스포럼)'에 참석, K-조선의 미래를 소개하고 에너지 분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사진=HD현대] |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첫 공개 행보로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 3년 연속 참석했다. 그는 '에너지 산업 협의체'와 '공급 및 운송 산업 협의체'에 잇달아 참석해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운송 등 다연료 미래의 실현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선박의 건조·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적 빅데이터 기업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홍보 영상을 통해 미래형 조선소(FOS)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FOS는 데이터, 가상·증강 현실, 로보틱스, 자동화,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이 구현된 미래형 첨단 조선소다.
그는 영상에서 "HD현대는 수십 년 동안 가장 획기적인 기술로 세계 조선 산업을 선도해 왔다"며 "AI, 디지털 트윈 등 혁신 기술을 통해 새로운 수준의 생산성과 안정성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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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알렉스 카프(Alex Karp)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AI 조선소'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HD현대] |
◆ "미국에서 미래를 찾아라"… 방미 행보 중 빌 게이츠·팔란티어 CEO 등과 회동
그의 포부는 두 달여 만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방미 길에 오른 정 수석부회장은 6일 미국 워싱턴 D.C. 팔란티어 사무실에서 알렉스 카프(Alex Karp)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AI 조선소에 대해 논의했다.
두 사람은 양사의 협력이 한미 양국의 안보 역량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으며, 향후 AI 기반 국방 솔루션이 각국의 국가 안보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HD현대는 지난 2021년부터 팔란티어와 함께 조선소의 미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D현대는 2030년에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를 완료해 생산성 30% 향상과 건설 기간 30% 단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9월부터 팔란티어와 무인 수상 선박을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HD현대인프라코어와도 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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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이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해 이벳 M. 데이비스(Yvette M. Davids) 교장(오른쪽)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HD현대] |
3월 7일에는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Annapolis)에 위치한 미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해 이벳 M. 데이비스(Yvette M. Davids) 교장(해군 중장)과 사마라 파이어보(Samara Firebaugh) 교무처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만났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장에서 "HD현대는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자율운항, 디지털 첨단 선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세계 최정상급 이지스 구축함을 5척 건조해 해군에 성공적으로 인도, 국가 안보 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3월 12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 테라파워 창업자와 만나 HD현대중공업과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 체결식에 함께 했다.
HD현대의 우수한 생산 기술력과 테라파워의 첨단 SMR 기술을 결합해 나트륨 원자로의 공급 능력을 확대하고 상업화에 나설 예정이다.
HD현대는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되는 주기기를 공급하기 위해 최적화된 제조 방안을 연구 및 도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나트륨 원자로의 초기 실증 프로젝트를 넘어 본격적인 상업화에 필요한 제조 기반을 구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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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가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오른쪽부터) HD현대중공업 원광식 해양에너지사업본부장, HD현대 정기선 수석부회장, 테라파워 빌 게이츠(Bill Gates) 창업자, 크리스 르베크(Chris Levesque) 최고경영자 [사진=HD현대] |
◆ "경영능력은 실적으로 말하는 것"… 2025년 1분기 최대 영업이익 달성
경영 능력은 말이 아닌 실적으로 보여야 하는 기업 경영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역대 최대 실적으로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4월 29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실적 공시에서 연결 기준 매출 17조 869억 원, 영업이익 1조 2864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5%, 영업이익은 62.1% 대폭 증가하며 2017년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조선 부문의 수익성 개선 견인을 비롯해 전력기기 등 주요 사업 전반에서 실적 호조세가 지속된 데 따른 결과다.
조선·해양 부문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조업 일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 및 건조 물량 증가 ▲고선가 선박 매출 비중 확대 ▲선별 수주에 따른 수익성 개선 등으로 연결 기준 매출 6조 7717억 원, 영업이익 8592억 원, 영업이익률 12.7% 기록하며 2019년 분할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도 ▲신조 인도 증가 ▲환경 규제 강화 등 우호적 영업 환경을 바탕으로 주력 사업인 AM 사업을 비롯해 친환경 개조, 디지털 솔루션 등 전 부문이 고루 성장하며 전년 동기보다 26.8% 늘어난 4856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1.2% 증가한 830억 원을 달성하며, 영업이익률 17.1%를 기록했다.
수주 실적 역시 역대급 행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4월 28일 총 2조 5354억 원의 규모 컨테이너선 22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오세아니아 선사와 8400TEU급 컨테이너선 4척, 2800TEU급 컨테이너선 8척, 1800TEU급 컨테이너선 6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4월 23일에는 28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하고, 24일에는 1만 60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하며 나흘 새 총 22척을 수주한 성과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1월 23일 3조 7000억 원 규모 유럽 소재 선사와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 12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하며 올해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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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서울모빌리티쇼 HD현대관을 방문한 HD현대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HD현대사이트솔루션] |
◆ 남은 과제는 경영권 승계… 오너 경영 시대 시작할 시점은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더해 쏠리는 관심은 경영권 승계다. HD현대는 정계에 진출한 정몽준 이사장이 일찌감치 경영에서 손을 떼며 지난 1988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은 '현대중공업의 살아 있는 역사' 권오갑 회장이다.
현재 HD현대의 최대 주주는 정몽준 이사장으로 HD현대 지분 26.6%를 보유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HD현대 지분 6.12%를 갖고 있다.
재계는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 승계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HD현대가 전문 경영인 시대를 끝내고 3세 시대를 시작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이 권 회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을 늘 주목하는 이유다.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직을 3연임 중인 권 회장의 이번 임기는 2026년 3월 28일까지다.
이미 HD현대는 정 수석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시점에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 모태인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6년부터 현대로보틱스, 현대그린에너지, 현대건설기계, 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일렉트릭 등 5개 회사를 계열 분리했다.
2017년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현대중공업을 인적 분할한 지주사인 HD현대를 설립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었던 그룹 명칭도 202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HD현대로 바꿨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