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사업에 골리앗 이긴 다윗 신화 없다" 대형 건설사 독식
공사비 경쟁력·공사 기간 단축 카드에도 속수무책
신규 브랜드 제시 등 대안에도 중소 건설사들 "뽀족한 수 없다" 한숨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주택경기가 악화하면서 정비사업에서 브랜드 경쟁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앞세운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대형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조합의 선택을 받으면서, 중소 건설사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사비와 다양한 혜택을 제시하더라도 수주전에서 밀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소 건설사의 브랜드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이를 높이려면 수주를 따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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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앞세운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대형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조합의 선택을 받으면서, 중소 건설사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사비와 다양한 혜택을 제시하더라도 수주전에서 밀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뉴스핌DB] |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최종 선정되면서 중소 건설사의 정비사업 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공사비용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도 중소 건설사들이 공사비 경쟁력을 앞세운 수주 전략을 펴고 있지만, 유명 아파트 브랜드를 내세운 대형 건설사들의 인지도에 밀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6일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은 총회를 열고 포스코이앤씨를 시공사로 최종 선정했다. 조합원 2070명 중 1834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 중 1333명(72.7%)이 포스코이앤씨를 선택했다. 반면 두산건설은 418표(22.8%)를 얻는 데 그치며 아쉽게 패배했다.
앞서 공사비 1조2000억원 규모의 성남 은행주공 재건축 단지를 두고,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7위 포스코이앤씨와 32위 두산건설이 치열한 수주전을 벌였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불렸던 이번 경쟁에서 포스코이앤씨는 특화 설계와 브랜드 가치를 내세운 반면, 두산건설은 경쟁력 있는 공사비를 강조했다.
두산건설은 3.3㎡(평)당 공사비를 635만원으로 제시하고, 착공 이후에도 공사비를 고정해 물가 상승에 따른 추가 부담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3.3㎡당 공사비 698만원, 공사 기간 59개월을 제안한 포스코이앤씨보다 조합원의 금전적 부담을 줄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포스코이앤씨는 건설사 브랜드 가치를 앞세워 최종 승리를 거뒀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파워가 희비를 가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합원들에게 분담금 부담이 적은 조건을 내세우더라도, 향후 아파트 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조합원들이 인지도가 높은 건설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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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핌DB] |
이 같은 브랜드 선호 현상은 다른 정비사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 경험을 몇 차례 겪은 이들은 중소형 브랜드보다는 대형 브랜드가 집값 상승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격적인 메리트가 크지 않더라도 대형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공능력평가에서 큰 격차가 있는 수주전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설사가 10대 건설사를 이긴 사례는 드물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20년 전북 전주시 종광대2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당시 21위였던 동부건설이 3위 대림산업을 꺾은 것이다.
아파트 분양시장에서도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R114가 진행한 '2024년 베스트 아파트 브랜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3%가 "브랜드 가치가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대형 건설사 선호도는 수주 실적으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기준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수주 규모는 총 27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39% 증가한 수치로, 모든 10대 건설사가 '1조 클럽'에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중소 건설사들은 정비사업에서 소규모 가로주택 정비사업 등으로 밀려나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중견 건설사들은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규 주거 브랜드를 적극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금호건설, HL디앤아이한라, 반도건설 등이 각각 '아테라(ARTERA)', '에피트(EFETE)', '카이브 유보라'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면 수주를 따내야 하기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결국 각 건설사가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해결책이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면 주요 단지 수주가 필수적이어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이라며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