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기본, 여야 갈등에 해 넘겨 1년째 지연
산중위, 11차 국회 보고 합의…이달 내 확정 예상
12차 전기본 발표 코앞…정부, 작업 착수 못해
에너지 전문가 "정부, 거대 야당 의식해 눈치봐"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에너지 수급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갈등으로 1년 넘게 공전해 온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에 뒤늦게 속도가 붙고 있다.
다만 이미 오랜 기간 지연된 탓에 11차 전기본을 확정하더라도 곧바로 다음 차수 전기본을 새롭게 발표해야 한다. 정부의 에너지 수급 계획에 차질을 빚으면서 에너지 업계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 산업부, 이달 19일 '11차 전기본' 국회 보고 예정…여야 극적 합의
17일 국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오는 19일 전체회의를 열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마련한 11차 전기본을 보고받을 계획이다.
전기본은 본회의 처리가 필수적인 법안 성격은 아니지만, 절차상 국회 상임위 보고를 거쳐야만 한다. 그동안 야당이 전기본에 담긴 신규 원전 확대 등의 내용에 반대하면서 보고 일정을 잡는 데 차질을 빚어왔으나, 최근 여야 간사가 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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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고 이후에는 같은 달 21일 예정된 전력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위원회 심의는 절차상 행위에 가까워 국회 보고를 무사히 넘기고 나면 사실상 모든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전기본은 국가의 안정적인 중장기 전력 수급을 위해 2년 주기로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계획안이다. 계획 기간은 향후 15년으로, 이번 11차 전기본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 적용된다. 내용으로는 ▲전력수급 기본 방향 ▲장기 전망 ▲발전설비 계획 ▲전력수요 관리 등을 포함한다.
당초 11차 전기본은 초안 마련부터 계획된 일정보다 훨씬 지연됐다. 2년마다 수립하는 계획상 늦어도 지난해 연초에는 초안이 공개돼야 했지만, 총선 등이 맞물리며 5월에서야 실무안이 도출됐다. 정부는 같은 해 9월에 관련 공청회를 개최한 뒤 국회 보고를 추진해 왔으나, 여야 간 이견을 보이며 속도를 내지 못했다.
여야가 전기본 수립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으면서 오는 19일 국회 보고는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야당은 여전히 원전 확대를 반대하고 있지만, 산업부가 마련한 절충안을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산업부는 '대형 원전 3기·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건설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대형 원전 2기·SMR 1기'로 수정한 바 있다.
산중위 관계자는 "전기본을 비롯해 '에너지 3법' 등 주요 법안들의 처리가 시급하다는 데에는 이미 공감대가 있다"며 "양측 모두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형식상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절충안이 제시된 만큼 합의하는 방향으로 갈 듯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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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의 신한울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2022.12.06 nulcheon@newspim.com |
◆ 12차 전기본 발표까지 불과 '1년'…연쇄 지연 가능성에 업계 시름 커져
문제는 이미 다음 차수인 12차 전기본을 공개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2년을 주기로 발표가 이뤄지고 있기에 12차 전기본은 늦어도 내년 초 발표돼야 한다. 불과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다음 차수 전기본 발표도 연쇄적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1차 전기본 발표·확정을 모두 마치고 12차 전기본 준비에 착수했어야 하지만, 앞선 차수가 늦어짐에 따라 다음 전기본에 대한 실무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12차 전기본에 대한 내부 작업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발표가 11차 전기본처럼 늦어지는지에 관해 고민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라고 본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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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림해상풍력단지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
이미 에너지 업계 등에서는 11차 전기본보다 12차 전기본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11차 전기본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 12차 전기본은 2026년부터 2040년까지 적용된다. 관련 업계 입장에서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반영되고, 보다 긴 미래를 내다보는 다음 차수 전기본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본은 차수에 따라 정부가 중점을 두는 부분이 크게 달라진다"며 "11차 전기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12차 전기본이 나온다고 하면, 당연히 12차 전기본을 보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기본이 지속 지연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전기본 발표 지연 과정에 정치적 요소들이 연관돼 있음을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일관된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최근 국제 경기 혼란과 탄소중립 요구 확대 등 전력수요에 변동성이 굉장히 커졌다. 전기본을 수립한 뒤 다음 차수 전기본을 만들 때까지 바뀌어야 할 사항들도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라며 "이를 감안하면 전기본 수립 기간은 2년보다 더 촘촘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전기본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조준해 "정부는 보신주의적 태도로 수립 기간이나 발전 계획 실현 가능성 등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거대 야당의 압박 등을 의식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r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