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카메라 앞에서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워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악수하고 인사하는 게 국회입니다. 적응해야 할 겁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인사가 해준 말이다. 국회의원 간 말다툼은 기본이고 고소에는 맞고소로, 고발에는 맞고발로 대응하는 게 '여의도 문화'라는 설명이었다. 이 전직 보좌관은 18~19대 국회(2008년 5월~2016년 5월)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정치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여의도 문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22대 국회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당과 야당 의원 간 고발과 맞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2025.01.13 ace@newspim.com |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지난 13일 서울경찰청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김용민 정책수석부대표,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 김용민·김우영·강선우·남인순 의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를 무고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도 고발했다.
민주당도 이에 지지 않고 맞고발로 대응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윤상현·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은 내란 선전 혐의 등으로 고발당한 상황이다. 정부와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 건수는 80건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다. 대화를 통해 의견 차이를 좁히기보다는 고발장부터 작성하는 게 여의도 문화인 셈이다.
국민을 대표하며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국회의원이 앞다투어 고발전에 나서다 보니 사회는 '고소·고발 만능 공화국'이 되고 있다.
대검찰청이 공개하는 '형사사건 동향' 통계를 보면 2023년 고소·고발 사건은 33만1281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같은 통계에서 고소·고발에 연관된 인원은 2023년 48만123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늘었다. 전체 형사 사건 3건 중 1건(31.8%)은 고소·고발 사건이다. 고소·고발 증가로 인해 경찰·검찰 사건 처리가 늦어지며 치안 공백이 우려된다는 지적은 매해 국정감사에서 나오는 단골손님일 정도다.
고소·고발 남발에는 '법대로 하자'는 '사법 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하지만 국회가 사법 만능주의로 갈수록 대화와 토론, 양보와 타협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행을 초래할 수 있다.
흔히 선량한 국민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빗대어 말한다. 일반 국민은 평생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고발장이 접수됐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일반 국민이다. 국회의원은 고발을 남발하는 DNA를 버리고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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