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작가 기회 위축시키고 산업 성장 둔화시킬 것"
"글로벌 기업과 역차별로 K-콘텐츠 경쟁력 약화 우려"
"창작자 의견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창작자 보호 법안"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COVID-19 팬데믹 이후 콘텐츠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만화‧웹툰 중소 업체들은 성장 둔화세 속에서 도산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작계, 산업계, 학계가 우려를 표하는 '문화산업 공정유통법' 추진은 산업의 양적 성장과 문화의 질적 다양성을 동시에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의원 전재수, 강유정, 김승수, 강준현, 이헌승 의원실과 국회 입법조사처(처장 이관후)는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문화산업의 공정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법적 과제 모색'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사) 한국만화가 협회(회장 신일숙)의 손상민 이사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문화산업 공정유통법(안)(이하 문산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취지 실현의 한계 및 왜 웹툰 산업에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지를 논의하고, 웹툰 산업의 특수성을 적합하게 반영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제언했다.
손상민 이사는 문산법(안)이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법안의 현실성을 비판했다.
특히 "웹툰 시장은 창작자, 에이전시, 제작업자, 유통업자가 연결된 다층적 구조이며, 대형 플랫폼들은 단순 유통업자를 넘어 창작 지원과 수익 창출을 돕는 파트너 역할을 한다"라며 문산법(안)이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유연한 계약 형태와 창작자 지원 모델을 배제한 경직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강풀 작가의 웹툰 '조명가게' 포스터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2024.12.19 alice09@newspim.com |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문산법(안)은 콘텐츠의 특성과 소비경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유통법을 그대로 적용한 점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웹툰·웹 소설 산업에서 유통업자가 제작업자를 겸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규제가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문산법(안)은 문화상품 제작업자를 피해자, 유통업자를 가해자로 전제하지만, AI 시대의 다양한 사업 형태와 창작 협력 구조를 간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손상민 이사는 문산법(안) 제13조 금지행위가 창작자 보호를 위해 명시된 규정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창작자의 기회를 위축시키며, 미래 인재 육성과 웹툰 불법 유통 근절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단기적으로는 산업 성장 둔화, 장기적으로는 문화 다양성 저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문산법(안)이 판매촉진 비용 부담 전가를 금지하면서 시장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웹툰 시장에서 무료 미리 보기는 신인 작가와 인지도가 낮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주요 수단이다.
이에 "무료 미리 보기가 제한될 경우 신인 작가의 시장 진입이 줄고 콘텐츠 다양성이 감소할 것이며, 소비자 후생 저하와 웹툰 불법 유통 촉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홍대식 교수도 이에 대해 "유통업자가 금지행위를 준수하면서 신인 작가와의 협력을 꺼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이는 창작자와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2024 만화·웹툰, 애니메이션, 캐릭터, 음악 이용자 조사 인포그래픽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
한편, 손상민 이사는 문산법(안)이 K-웹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내 사업자들이 강한 규제를 받는 동안, 글로벌 웹툰 시장에 진출한 해외 빅 테크 기업들이 규제에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인재 유출이 심화되어 국내와 해외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대식 교수도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OTT와 음원 산업에서 지배력을 강화한 현실이 웹툰 등 다른 문화산업에도 확산될 수 있다. 해외 플랫폼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할 경우 또 다른 형태의 착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규호 교수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국내만 규제를 강화하면 K-웹툰을 포함한 한류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문산법(안)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손상민 이사는 문산법(안)이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임에도 불구,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의견은 물론, 웹툰 산업 내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만약 폭넓은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특정 사례 해결에 국한된 규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적합한 법안 마련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창작자, 제작업자, 플랫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법안만이 웹툰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창작자와 산업의 상생을 도모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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