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친(親)유럽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기로에 섰던 동유럽 소국(小國) 몰도바가 3일(현지시간)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유럽연합(EU) 가입 속도전을 주장한 마이아 산두(52) 현 대통령이 승리했다.
이번 선거는 러시아가 산두 대통령의 낙선을 위해 거액의 자금 동원해 상대 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유럽과 친러시아 진영이 격돌해 국제사회가 크게 관심을 보였다.
인구 280만명의 몰도바는 지난 2022년 3월 우크라이나·조지아 등과 함께 EU에 회원국 가입 신청서를 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한 다음달이었다. EU는 그해 6월 몰도바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했고, 현재 각종 예비절차가 진행 중이다.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남서쪽 국경에 접한 나라로 동부 지역에는 친러 세력이 강하게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했다.
[키시네프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3일(현지시간) 실시된 몰도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축하 꽃다발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24.11.04 ihjang67@newspim.com |
몰도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일 오전 현재 99.86%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산두 대통령이 55.4%를 득표해 당선을 확정했다. 친러시아 정당의 지지를 받는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 전 검찰총장은 44.6%를 얻었다.
산두 대통령은 "자유와 진실, 정의가 승리했다"면서 "우리가 단결하면 우리를 무릎 꿇리려는 자들을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지난 몇 달 동안 몰도바는 유럽 역사상 전례없는 공격을 받았다"면서 "더러운 돈, 불법적인 표 매수, 외부의 적대 세력과 범죄 단체의 선거 방해 거짓말, 증오심 유포, 사회 내 공포가 횡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은 단결했고 자유와 시민이 승리했다. 평화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이겼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몰도바와 몰도바 국민의 유럽 통합적인 미래를 향해 계속 협력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지낸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이런 추세는 앞으로 며칠, 몇 달 다른 (유럽) 나라에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몰도바 대선에 "러시아의 공격적이고 대규모 개입"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몰도바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지만 주변 강대 세력들 간 경쟁의 초점이 되어 왔다"면서 "산두 대통령의 승리는 옛 소련 영토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시도하는 모스크바를 제지하는 데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몰도바는 독립 이후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바람에 인구가 35% 이상 줄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7500 달러에 머물고 있다.
외신들은 이번 대선에서 러시아가 산두 대통령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공작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몰도바 당국은 러시아가 선거 결과를 왜곡하기 위해 1억 달러(약 1375억원)를 투입했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몰도바 당국은 친러시아 기업인 일란 쇼르를 중심으로 한 친러시아 세력이 최대 30만 명의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살포하고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고 보고 있다.
산두 대통령은 몰도바에서 대학을 나온 뒤 미 하버드대 정책·행정대학원인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12년 교육부 장관이 됐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오는 2030년까지 EU 가입이 목표"라면서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그에 필요한 모든 개혁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EU 가입 문제가 몰도바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달 20일 실시된 몰도바 국민투표에서 EU 가입에 찬성하는 비율이 50.35%에 그쳐 산두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투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