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성향 오르반, 러시아·중국 잇따라 방문… EU는 "조약 위반" 반발
헝가리, 이달 1일부터 6개월짜리 EU 순회의장국 맡아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빅토르 오르반(61) 헝가리 총리가 유럽연합(EU)의 각료이사회 순회의장국 명함을 들고 최근 러시아, 중국 등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독자적 행보에 나서자 EU 회원국들이 "그는 EU를 대표하지 않는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EU 내부에서는 "오르반이 EU 조약을 위반하고 있다"며 헝가리의 의장국 지위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U 의장국은 27개 회원국이 6개월씩 돌아가며 맡는다. 헝가리는 이달 1일부터 의장국이 됐다.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일 키이우에서 회담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EU 지도자들이 잇따라 비공식회담을 갖고 오르반 총리에게 '공인되지 않은(unauthorised)' 외교 순방을 멈추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EU 정상들은 편지에 자신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내용도 분명히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회에서는 헝가리의 의장국 자격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강경론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초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총 의석 720석 중 77석을 얻어 원내 5위에 오른 리버럴 성향의 유럽자유당(Renew)은 이날 "오르반의 '악당(rogue)' 리더십을 억제해야 할 때"라며 "이사회가 그의 의장직 수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레리 헤이어 유럽자유당 대표는 "오르반은 EU의 기본 입장을 훼손하고 우리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며 "이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EU 법률기관은 최근 검토 결과, 오르반의 러시아 방문이 EU 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EU의 목표 달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조치를 금지'하는 조항과 '모든 회원국의 외교 활동은 전적으로 충성심과 상호 연대라는 정신 아래 수행돼야 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오르반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정치적 실수였다"면서 "지난 10년 동안 어떤 국가의 행동에 대해 다른 26개 회원국이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르반은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했고, 1989년 개혁주의 학생운동(피데스의 전신)의 수장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0년 국회에 입성한 뒤 1998년엔 우파연합 정권을 이끌며 총리에 올랐다. 이후 8년간 야당 대표로 활동하다 2010년 다시 총리가 됐다. 지난 2022년 총선에서 승리, 4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초기 중도우파 성향을 갖고 있던 피데스를 극우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르반은 유럽 내 대표적인 친러 인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그가 이달 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잇따라 방문, 평화협상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지만 EU와 나토는 그가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편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최근 샤를 미셸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간은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라 러시아군 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극렬한 트럼프 지지자이기도 하다. 지난 4년 동안 바이든 대통령과 공식 회동을 가진 적이 없지만 트럼프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올 3월에도 플로리다에 있는 마라라고 리조트를 찾아가 트럼프를 만났다. 트럼프가 형사 재판에서 34건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그를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치켜세웠고, 작년 8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트럼프는 서구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수 많은 논란에도 오르반은 앞으로도 친러 행각을 계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는 "다음 주에도 평화를 위한 기회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한 회담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중국 등은 이런 그를 이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일 오르반 총리의 모스크바 방문에 "우리의 오랜 파트너로서뿐 아니라 EU 의장국으로서 왔다고 이해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ihjang6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