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초지일관 '원점 재논의' 고수···정부측 패배 강요
"2000명도 과학 근거 수치 아니야" 새로운 협의체 요구
의료대란 주체인 전공의들 설득할 방안도 병행돼야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정부가 의료계와의 대화 물꼬를 모색하고 있으나 대화의 장이 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의료계의 각 단체 간 통일된 의견을 만드는 길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또 의료대란의 주체인 젊은 의사들이 정부와 의료계 지도부의 결정을 순순히 따른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담화에서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안하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방송에 출연해 그동안 고수해 오던 의대정원 증원 2000명 규모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의대증원 정책의 당사자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계의 통일된 안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양윤모 기자 = 1일 오전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의대 증원·의료 개혁,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윤석열 대통령의 1시간 가량의 대국민 담화 TV를 시청하고 있다. 2024.04.01 yym58@newspim.com |
보건복지부는 다음날인 2일 "집단행동을 접고 과학적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의료계 내 통일된 더 합리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정부는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하며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문제는 의료계의 통일된 안 마련이 가능한가 여부이다. 현재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정부와 각을 세워 오고있다. 의협 비대위는 전날 오후 전의교협 브리핑에 앞서 대통령 담화문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의대정원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의협 비대위에 지난달 31일 신설된 정책분과위에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내정됨에 따라 양 단체의 소통은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관측되지만 통일된 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임현택 신임 의협 회장 당선인은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대통령 담화문에 대해 "입장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임 당선인은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 전제조건으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철회'.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박민수 제2차관 파면',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국민의힘), 김윤 서울의대 교수(더불어민주당) 비례 공천 취소'를 요구해왔다.
정부 정책을 향한 강경한 발언과 자세로 의사 회원들의 압도적 지지(65.43%)를 얻은 임 당선인 입장에선 정부가 던진 갑작스런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 또한 담화에서 '2000명'이라는 수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고,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모"라고 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특정 직역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임현택 신임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 |
또 정부 관료의 파면 요구에 대해서도 "정부를 위협하고"있다며 "대통령인 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화문에 담아 정부가 유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의료계 일각에선 조윤정 전의교협 홍보위원장이 지난 1일 브리핑에서 "통일된 안 마련이 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사전에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과 논의하지 않은 개인 발언으로 보고 있다.
의협 비대위 고위 관계자 A씨는 "3월 31일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 측이 구체적 숫자 제시를 요구하면 무대응하기로 원칙을 정했다"면서 "비대위의 대화 조건은 '원점 재논의'"라고 강조했다.
의협 비대위가 주장하는 '원점 재논의'의 정의는 의대정원 증원을 0명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요구하는 과학적인 추계를 위한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증원 숫자를 다시 추계하자는 것이다. 의협 비대위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2025학년도 의대증원 정책은 사실상 백지화된다. 정부도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가 힘든 요구 조건이다.
A씨는 "2000명이란 숫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숫자이다. 역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면서 "과거 의료현안협의체(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참여) 28차례 회의록 어디에도 2000명이란 단어는 나온 적이 없다. 300명도 500명도 숫자가 제시됐던 적은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설령 의협 비대위에서 절충안을 만들어 협상장으로 나간다 할지라도 현재 의료계 집단행동(의료계는 자발적 사직이므로 개인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의 주체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동의를 하겠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A씨는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공의들은)돈만 아는 의사로 낙인이 찍힌 사회적 인식에 대한 상처가 생겼다"면서 "대통령이 이들에게 사과를 한다면 그들의 마음이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전공의들이 내세웠던 7대 요구 중 여섯번째 항목이었지만 사실상 우선순위로는 1순위"라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2월 21일 성명에서 내세운 대화 조건 7대 요구안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수련 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대책 제시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다.
calebca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