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나노기술 등장하지만 SF와 미스터리 뒤섞여 볼만
중국 네티즌들, 문화대혁명 너무 과격하게 그렸다면서 반발
'왕좌의 게임' 제작진 참여, 넷플릭스 글로벌 흥행 1위 기록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넷플릭스 8부작 SF 시리즈 '삼체'(三體, 3 Body Problem)는 시작부터 인상적이다. 1960년대 말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 교정. 문화혁명에 앞장 선 홍위병들이 교수이자 물리학자인 예저타이를 인민재판에 회부한다.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기여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는 죄목이다. 교수는 학문적 자유를 부르짖으며 저항하지만 결국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다. 아버지가 맞아죽는 현장을 목격한 딸 예원제는 강제노동소로 끌려간다. 아버지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실력을 인정받아 외계인과의 통신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비밀 관측소에서 일하게 된다. 예원제(진 쳉)는 80년대까지 여기에 억류됐다가 마오쩌둥 사망 이후의 칭화대 교수로 복귀한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포스터. [사진 = 넷플릭스 제공] 2024.03.26 oks34@newspim.com |
중국 작가로 SF문학 최고 권위인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의 3부작 소설(총 1972쪽 분량)을 원작으로 한다. 일찌감치 이 소설을 점찍은 넷플릭스가 '왕좌의 게임'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쇼 러너 감독에게 총 연출을 맡겨 제작했다. 홍콩계 캐나다 국적의 신예 쩡궈상(曾國祥)이 감독을 맡았다. 영화는 양자역학부터 천체학, 나노과학 등 온갖 학문적 이론이 등장하지만 이를 잘 모른다 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는 지구의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일 때 발생하는 재앙을 소재로 인류에게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의 운명을 얘기한다.
미국으로 건너온 노년의 예원제(로잘린드 차오)는 미국인 석유재벌 마이크 에반스(조나단 프라이스)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그 와중에 런던에서 줄잡아 30명 정도의 물리학자들이 잇따라 의문사 한다. 영국 내 가장 촉망받는 학도이자 옥스퍼드 5인방으로 불리는 사울, 진 청, 오거스티나 살라사르, 윌 다우닝, 잭 루니의 주변에서도 이상한 사건이 연속된다. 이들은 모두 의문의 자살을 한 물리학자 베라 예의 제자들이다.
베라 예는 죽기 직전 누군가가 보낸 VR 헤드셋을 쓰고 게임을 즐겼다. VR을 전해 받은 베라의 제자이자 친구인 진 청(제스 홍)도 가상현실 게임에 빠진다. 이론물리학을 그만두고 사업가로 변신하여 큰 돈을 번 잭 루니(존 브래들리)도 헤드셋을 선물 받고 가상현실을 넘나들다가 누군가에게 살해된다. 첨단 나노기술의 선구자인 오거스티나(에이사 곤잘레스)는 자신의 망막에 타임 코드가 떠오르자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거대한 나노 프로젝트를 포기한다. 그러나 그녀의 나노기술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1000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도구로 쓰인다. 또다른 친구인 물리학과 교수 윌 다우닝(알렉스 샤프)은 췌장암 말기로 죽어 간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한 장면. [사진 = 넷플릭스 제공] 2024.03.26 oks34@newspim.com |
특수경찰 다스(베네딕트 웡)와 비밀경찰 조직의 수장인 웨이드(리암 커닝엄)는 물리학자들의 이상한 죽음과 살인사건을 뒤쫓으면서 거대한 외계인의 실체와 만난다. 이 모든 일들이 비밀관측소에서 일했던 예원제가 외계인에게 교신을 보낸 것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된다. 석유재벌인 마이크 에반스가 400년 뒤에 지구침공이 예정된 외계인 침공에 맞서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삼체'는 SF드라마라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물리학을 기반으로한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인간에게 '왜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은 여전하다. '왕좌의 게임'을 만들었던 제작진들은 원작과는 다르게 비디오게임 속의 가상현실을 버무려 넣어서 흥미를 높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팽팽하게 이끌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에서는 인민대혁명 시절 잔인하게 공개 처형하는 장면을 놓고 시끄럽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공식적으로 시청이 허용되지 않는 중국에서 훔쳐보기를 했다고 맞선다. 이제 시즌 1이 끝났다. 아마도 '왕좌의 게임'이 그랬듯이 시즌 2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넷플릭스에서는 글로벌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지금 펼쳐지는 기술발전의 속도에 멀미감을 느끼듯이 드라마 속에서도 인간이 만든 기술이 다시 인간을 공격하는 끔찍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광활한 우주의 어디에서 외계인들이 올 수도 있겠다는 오싹한 상상도 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