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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서] "물가 잡는 기관 아닌데"…공정위 '정체성 혼란'

기사입력 : 2023년06월26일 10:10

최종수정 : 2023년06월26일 10:10

또 다시 물가 잡기에 동원되는 공정위
업무 정체성 논란 속 모니터링 돌입

[세종=뉴스핌] 김명은 기자 = 정부가 최근 라면가격 인하를 압박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또 다시 물가 잡기에 동원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공정위가 특정 품목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관치 물가 관리'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선이 많다. 정부가 민간의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이라는 공정위 설립 목적과도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 추경호 부총리 이어 한덕수 총리까지 '물가 잡기' 동원

26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공정위는 현재 국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식품의 가격 추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를 주문한 데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가 일부 제품의 가격 담합 가능성을 공정위가 들여다볼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백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03.29 yooksa@newspim.com

공정위가 물가 관리에 나서는 것을 두고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1년 7월 공정위는 대한양계협회와 한국계란선별포장유통협회에 법 위반 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고, 이후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현장을 방문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계란 가격 조정을 위해 전 부처가 나설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두고 그 해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의 강한 질타가 쏟아졌다. 유 의원은 "공정위가 새로운 플랫폼 연구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 부족을 얘기하면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계란 가격 잡겠다고 뛰어다녀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가격 담합이 이뤄졌다면 해당 업체를 제재하면 될 뿐 공정위가 직접 단속에 나서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었다.

유 의원은 당시 조성욱 공정위원장을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물가를 관리하는 기관이냐"고 물었고, 조 위원장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전임 김상조 위원장 시절 공정위가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공정위의 주요 목적은 올바른 시장 정책을 만드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특정 물품의 가격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사실이 거론되기도 했다.

공정위는 조직 내부에 카르텔조사국을 두고 가격·출고량 담합 등을 규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대응이 언급될 때마다 공정위 역할도 강조되고 있다.

◆ 공정위, 담합 아니면 시장가격 개입 법적근거 없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정위는 가격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 물가를 억제하는 기관이 아니다. 가격 담합을 규제하는 것은 시장 가격이 일률적으로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업체 자율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거 국내 굴지의 연예 기획사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이돌 상품이 지나치게 바싸 논란이 됐지만 담합을 제외하고 공정위가 시장 가격에 개입할 법적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공정위가 물가 잡기에 동원되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생활물가가 급등하자 정부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52개 품목으로 산출한 이른바 'MB 물가지수'를 관리했다. 이 때 공정위가 주요 업종에 대한 담합 조사를 진행했고, 특히 김동수 위원장 시절에는 '물가와의 전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시 관련 부서 직원들이 대거 현장에 투입됐다"면서 "공정위 직원들이 담합 조사를 명목으로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물가 상승 억제 효과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현재 물가 대응과 관련해 비상경제차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참여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총리가 직접 조사 지시를 내리면서 또 다시 물가 잡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1차관이 주재하던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다뤄지던 물가 관리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비상경제차관회의에 흡수됐다"면서 "공정위는 담합 및 경쟁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재부가 공식적으로 공정위에 물가 관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dream78@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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