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개 시민단체 연합해 전국 단위 대책위 출범
특별법 제정 발의됐지만 국회 계류
전문가 "현실적으로 어려워…무이자 대출 등 지원해야"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최근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숨진 이들은 모두 20~30대 청년으로 사회초년생 때 모은 목돈에 전세대출을 더해 마련한 돈을 전세 사기로 한 번에 잃었다. 피해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큼 늦었지만 제도적 안전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전세사기 전국대책위 출범…"경매 중단부터"
65개 시민단체는 18일 "미추홀구만의 일이 아니"라며 전국 단위의 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최근 숨진 이들은 모두 인천 미추홀구 거주자들로, '인천 건축왕'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단체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잠재적 피해자"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구조되었지만 안전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는 이날 구체적으로 ▲경‧공매 중지 및 퇴거 중단 긴급 실시 ▲전세가격(보증금) 규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 ▲피해자 채권매입 ▲범정부 TF 마련 등을 요구했다. 또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4.18 mironj19@newspim.com |
'경‧공매 즉시 중단'과 관련, 이날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대책위에 가입된 34개 아파트·빌라의 1787세대 가운데 경매·공매에 넘어간 세대는 1066세대(5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은 "(피해자들은) 오늘 경매가 시작되면 어떡할지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라며 "경매매각 기일은 마치 깜깜한 암흑과도 같다. 은행은 경매에 팔리고 나면 보증금을 일시 상환하라고 촉구하고, 정부는 대책이 나올 만큼 나왔다고 책임을 회피한다"고 했다.
'전세가격 규제를 위한 임대차보호법 개정'과 관련해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김준호 팀장은 "집값과 전셋값을 폭등시켜놓고 무책임한 보증, 대출을 남발하고 방치한 게 정부 아닌가"라며 주택가격 70% 또는 공시가격 100% 이하로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또 정부가 피해자의 채권을 매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과거 부도 임대아파트도 특별법을 만들어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공공 매입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피해자들이 잘못이라고 하는데, 임대인, 중개인, 관련 업체까지 모두 다 같이 짜고 속인 범죄"라며 "모든 정보를 조작했으며 전세금도 매매시세를 넘지 않은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으로는 안 된다. 특별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와 조오섭 책임의원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깡통전세 전세사기 피해 구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04.17 leehs@newspim.com |
◆피해자 대부분 20·30대…특별법 제정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전세사기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돈이 없는 사회초년생인 청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9월 '전세 사기 피해지원센터' 개소 후 4개월간 접수된 피해 사례는 20·30세대가 72%에 달한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점차 커지지만 해당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지난달 30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각각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국가 재정과 주택도시기금 등을 활용해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최소 절반 이상 돌려받거나 공공임대주택을 지원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로, 대책위 등이 요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미 전세 사기의 피해 규모가 너무 크고 피해 주택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정부 차원의 피해 구제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세금을 투입해서 갚아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기죄가 한둘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했다.
이어 "사기를 당한 빌라가 경매에 넘어갈 때 경매를 세입자가 낙찰받도록 정부가 우선 매수권을 주거나 변제금을 지원해주는 방법이 도입되어야 한다"며 "올해 1년 동안 접수를 받아서 낙찰받는 분들은 10년 정도 상환기간을 주고 무이자 대출을 통해 갚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앞으로 이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며 "주택수, 세금체납, 근저당 등을 확인해서 청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대책위 또한 관련해 "전세대출과 보증보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김 소장은 "처벌도 강화되어야 한다"며 "무기징역에 준하는 엄벌을 통해 전세 사기를 저지르면 패가망신 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책위는 "세입자들이 안전하게 피해를 구제받는 날까지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부터 광화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며 오는 5월 1일부터 시민참여행동과 더불어 특별법제정촉구 서명운동, 전국 순회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오는 6월 3일에는 세입자의 날을 맞아 공동행동도 예정돼 있다.
앞서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 건축왕 A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전날에도 전세사기 피해자 30대 여성이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공인중개사 등과 함께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상태다.
mky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