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국가 중 EU 가장 험난…항공당국 직접 설득
기업결합 승인 사례도 많아…심사기조 분석해 대응
에어프레미아 외 대안 없어…외항사에 슬롯 넘겨야
"자국주의 심사하는데 우리만 셀프반납" 지적도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우리나라 항공당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심사 중인 유럽연합(EU) 설득에 나선다.
EU 심사가 양사 기업결합을 최종 좌우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심사가 진행 중인 국가 중 가장 철저하게 기업결합을 들여다보고 있는 EU를 상대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EU가 합병을 허가한 사례도 상당수 있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지만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항공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만약 EU가 합병을 승인해도 상당부분의 슬롯 반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의 슬롯을 넘겨준 영국 사례를 감안할 때 EU에서도 슬롯 축소가 유력해보이는 만큼 양사 합병이 결국 국내 항공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2022.12.22 unsaid@newspim.com |
◆ 항공당국, EU 직접 설득 추진…승인 사례도 많아 심사기조 전략 접근
2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항공당국은 EU 경쟁당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본심사에 착수한 이후 직접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작년 1월 대한항공으로부터 기업결합 신청을 받은 EU는 2년 가까이 사전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EU가 사전심사를 마치면 기업결합으로 국내 항공당국이 해야 할 조치 등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EU도 만날 필요성을 인식해 일정을 조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사전심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만날 사람이나 대략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EU는 기업결합 심사가 가장 까다로운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캐나다의 에어캐나다와 에어트랜젯 그리고 스페인의 1위 항공그룹 IAG(International Airlines Group)와 에어유로파 모두 경쟁제한성 완화를 위한 조치가 부족하다는 EU 판단에 기업결합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하지만 불허 사례만 집중하기보다 사안별로 EU의 심사기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와 항공업계가 참고할 만한 사례를 추린 결과 EU에 기업결합을 신청한 19건 가운데 자진철회를 포함한 불승인은 4건이었다. 기업결합을 승인한 경우도 최소 11건 있다.
다만 EU 심사 사례를 볼 때 대형사 간 합병을 깐깐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이번 기업결합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노선별로 시장을 구분하는 글로벌 경쟁당국 입장에서 합병으로 노선 점유율이 독점에 이르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정 부분 슬롯 반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슬롯은 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를 말한다. 당장 심사 유예를 거쳐 합병을 승인한 영국 사례를 봐도 슬롯 반납은 예견돼 있다. 대한항공은 런던 히드로공항의 아시아나항공 슬롯 7개 모두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에 넘기는 조건으로 영국으로부터 시정조치 수용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 전체 관점으로 보면 히드로공항 슬롯이 17개에서 10개로 대폭 줄어든다는 뜻이다. 국가 간 히드로 공항 슬롯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뼈아픈 결과다.
EU 역시 상당한 규모의 슬롯 반납이 전제되지 않으면 합병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합병으로 인한 독과점 노선은 ▲바르셀로나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로마 ▲이스탄불 등 6개에 달한다. 이미 슬롯 반납이 결정된 런던 외 5개 노선도 상당수의 슬롯을 반납해야만 EU로부터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열린다.
[영종도=뉴스핌] 정일구 기자 =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객기들이 멈춰 서있다. 2020.04.22 mironj19@newspim.com |
◆ 에어프레미아 외 국내 항공사 대안 거의 없어…"공정위 셀프 반납 빌미, 합병 골든타임 놓쳤다"
자국에 유리한 심사를 한다는 점에서도 유럽 노선 슬롯 반납은 불가피하다. 영국이 이번 기업결합을 통해 자국 항공사의 이익을 확대시킨 것처럼 EU 역시 역내 항공사에 슬롯 배분을 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항공사(FSC)가 1개로 줄어든 우리나라에서 유럽의 장거리 노선을 띄울 수 있는 여력도 많지 않다. 에어프레미아가 유일하게 서유럽까지 운항 가능한 B787-9를 갖고 있지만 3대에 불과해 다양한 노선에 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부분의 슬롯을 유럽 항공사에게 뺏길 거라는 의미다.
다만 EU 외에 심사 중인 다른 나라는 부정적인 기류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본 경쟁당국과 만난 항공당국은 고의로 심사를 지연시키거나 기업결합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기술검토를 충분히 해야겠다는 요지의 일본 입장을 확인했다. 중국이나 심사 일정을 연장한 미국 역시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낮은 흐름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우리나라 항공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경쟁법 잣대로만 심사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 경쟁당국은 모두 자국 중심주의로 심사하는데 우리나라 경쟁당국이 노선별로 아주 깐깐하게 심사 결과를 내서 셀프 반납하는 양상으로 이들에게 빌미를 줬다"며 "시간끌기 전략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산업에 대한 이해나 자국 우선주의는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재무상태가 더욱 악화된 다운데 만약 기업결합이 불허되면 다시 막대한 세금이 투입돼야 하는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다"며 "합병을 안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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