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따라 시민단체 집회 장소도 용산으로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에 더 늘어날 듯
집무실 이전 환영하던 아파트 주민들도 반발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17일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인근인 전쟁기념관 정문 앞은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전하려는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잇따라 열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시민단체의 집회·시위 장소도 용산으로 옮겨지면서 주변 상인과 주민들의 불편 호소가 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7시 40분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3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권리예산을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해달라며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까지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전장연 활동가 8명은 15분간 횡단보도를 점거하며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경찰은 횡단보도를 점거한 이들에게 자진해산을 하라며 경고방송을 했으나 전장연 측은 이를 거부하고 계속 발언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도로 일부가 막히면서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일대에는 교통혼잡이 발생했다. 전장연은 횡단보도 점거를 마친 뒤 1개 차로를 이동한 뒤 오전 8시 20분쯤 삼각지역에 도착해 행진을 마쳤다. 전장연은 이달 20일까지 신용산역~삼각지역 출근길 도로 행진을 이어갈 예정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두 차례 연속 진행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최저임금제도 관련 기자회견을, 오전 11시에는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국정과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1시 기자회견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무상의료운동본부와 참여연대 등이 동참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 보건의료 국정과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5.17 mironj19@newspim.com |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수년간 1인 시위를 하다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용산으로 온 이들도 있다. 한 시위자는 전쟁기념관 좌측 인도에 1인용 텐트를 설치하고 노숙 농성을 벌였다. 또다른 시위자는 '내 집 내놔라'고 적힌 샌드위치 피켓을 몸에 두르고 정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오는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 집무실 인근을 찾는 시민단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에 맞춰 집무실 주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단체들에게 금지 통고를 했으나 이를 무시한 게릴라 집회나 기자회견, 1인 시위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참여연대는 한미정상회담에 맞춰 전쟁기념관 앞에서 한반도 평과 요구 기자회견과 집회를 하겠다고 서울 용산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이 집회 금지를 통고하자 참여연대는 지난 13일 집행정치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법원에 냈다. 전국민중행동, 시민평화포험, 자유통일당 등 진보·보수단체들도 집회 신고를 마쳤다.
경찰청이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국방부 청사 반경 1km 내 집회 신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용산서에 신고된 집회 건수는 272건으로 하루 평균 7.16건이다. 이에 경찰은 용산서에 집회·시위 관리와 정보활동을 하는 인력을 충원했다.
◆ "하루 아침에 시끄러운 동네 됐다"
이날 뉴스핌이 만난 삼각지역 일대 상인과 주민들은 윤 대통령 취임 후 달라진 주변 환경에 크고 작은 불편을 토로했다. 집회·시위에 따른 소음과 교통 체증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일생 생활에 불편한 점이 늘었다는 게 이들의 호소다. 집무실 맞은편에 사는 최모(47) 씨는 "앞으로 집회나 시위를 하면 열에 아홉은 다 이 곳으로 오지 않겠냐"며 "대통령이 온 동네지만 주민 입장에선 딱히 좋은 건 없다"고 말했다.
삼가지 어린이공원에서 만난 주민 양요섭(60) 씨는 "지난 주말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며 "지금이야 임기 초이지만 앞으로 대통령 국정운영에 따라 나라가 잘못되거나 어수선하면 (동네도) 별 수 있겠냐. 노조든 야당 의원이든 마이크 들고 다 여기로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대통령 집무실이 서울 용산구로 이전함에 따라 이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들 불만도 커지고 있다. 1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와 인접한 골목에 걸려있는 청와대 국방부 이전 결사반대 현수막.2022.05.17 filter@newspim.com |
집값이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삼각지역 인근 빌라에 산다는 김지선(42) 씨는 "골목마다 경찰이 있어 안심이지만 집무실 앞에서 시위를 하시는 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돌발행동을 하셔서 무섭다"며 "꼭 정문 앞에서 저러고 있어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집무실 맞은편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권모(72) 씨는 "하루에 기자회견만 3~4개 열리고 주말에도 열린다. 어쩔 때는 두 곳에서 와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할 때도 있다"며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다. 집갑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푸념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환영하던 용산역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들도 주거 환경을 침해받게 됐다며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용산역 인근 아파트·오피스텔 주민들이 모인 '7개 단지 협의회'는 주거 지역 부근 집회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서울시와 용산구청, 용산서에 제출할 예정이다.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시위가 늘면서 경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이 시민단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집무실 100m 이내 구간 일부 집회·시위를 허용하자 즉시항고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집회가 계속될 경우 시민 불편이 예상되고 대통령실의 기능과 안전도 우려된다는 게 이유다.
경찰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현행대로 집회·행진 금지를 유지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은 "국회와 대법원 등 헌법기관을 보호하는 집시법상 취지와 형평성도 고려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소명기회가 부족한 면이 있었던 만큼 본안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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