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의 호평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내놓은 신차들은 연이은 수상으로 디자인뿐만 아니라 성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폭등까지 악재가 이어지면서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지난 3월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하락했다. 현대차는 국내 5만2883대, 해외 26만1043대 등 전 세계 시장에서 전년 동월 대비 17% 감소한 31만3926대를 판매했다. 국내는 28.4%, 해외는 14.3% 줄었다. 기아는 국내 4만5066대, 해외 20만5580대 등 전년 동월 대비 0.9% 감소한 25만646대를 판매했다. 해외는 1.8% 소폭 증가했지만 국내가 11.7% 감소하면서 전체 실적도 아쉬움을 남겼다.
현대차기아 서울 양재동 사옥 [사진=현대차그룹] |
현대차그룹의 성적을 두고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에 따른 시장 위축에도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가 실적을 견인하면서 해외 경쟁사에 비해 나은 성적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 내부에선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가 안 팔려서가 아니라 생산 차질 때문에 기대했던 실적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등 부품 수급난으로 인한 출고 적체는 심각한 상황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 전기차의 경우 출고까지 1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 차질이 모두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란 점은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현대차그룹의 악재는 5년여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7년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여파로 현대차·기아는 주력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중국 시장은 5년여가 지난 올해까지도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20년엔 코로나19 사태가 덮쳤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낳았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2년여가 지나면서 소비심리 회복에 따른 자동차 업계의 반등이 예상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현대차그룹도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앞세워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사이 현대차·기아의 차량들은 품질에서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호평과 함께 수상 소식이 이어졌다. 아이오닉5는 독일과 영국에서 잇따라 2022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독일 아우토 자이퉁 전기차 비교평가, 아우토 빌트 전기차 비교평가에서는 경쟁사의 주요 전기차를 따돌리고 최고 평가를 받았다. 존 챌린 영국 올해의 차 편집장은 "아이오닉5는 디자인, 성능, 실용성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췄으며, 전기차를 찾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EV6은 한국 브랜드 사상 처음으로 2022 유럽 올해의 차에 등극했다. 앞서 2022 왓 카 어워즈 올해의 차, 2022 독일 올해의 차 프리미엄 부문 1위, 2021 탑기어 선정 올해의 크로스오버 등도 연거푸 거머쥐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EV6은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2022 레드 닷 어워드에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현대차 다목적차량(MPV) 스타리아도 레드 닷 어워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 2022.03.28 jun897@newspim.com |
성능과 디자인 모두 세계적 인정을 받으면서 현대차그룹은 비상을 기대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판매 실적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또 다른 대형 악재를 만났다. 전쟁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는 글로벌 공급망 붕괴 및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수급 제한이란 결과를 초래했다. 당장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무기한 가동이 중단됐다. 최근에는 국제 유가 급등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결국 기대했던 만큼의 실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재작년부터 제품이 좋게 나오기 시작했는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코로나19에 힘들었다가 잠잠해지려 하니까 다시 반도체 때문에 난리였고 여기에 전쟁 그리고 유가 폭등까지 겹쳤다. 사실 이런 악재들이 없었으면 지금쯤 훨훨 날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때 30만원을 바라봤던 현대차 주가가 떨어지며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자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현대차 측은 금리 인상과 반도체 수급난,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라며 원자재 가격, 물류비 상승 등 수익성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경영환경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올해 목표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올 초 총 432만대 판매에, 매출은 지난해보다 14%, 영업이익은 최대 6.5%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그룹은 고급차와 전기차 등 고수익 모델 판매 확대를 통해 현 상황을 타개할 계획이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최근 주가 하락은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 반도체 공급 이슈 등 글로벌 대외여건의 영향,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탈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이 크다"며 "전반적으로 주가에 대해서는 경쟁사 대비 실적이 좋은 편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고급차와 전기차 부분을 통해 주가를 부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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