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소비자들의 민심을 거스른 기업인의 최후는 그야말로 씁쓸했다. 바로 오너 2세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얘기다. 홍 회장은 불가리스 파문으로 회장직에서 자진해서 내려왔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눈물의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성난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홍 회장은 마지막 카드인 매각을 택했다. 제대로 된 회계 실사도 없이 오너일가 전체 지분과 경영권을 한꺼번에 넘겼다. 불가리스 논란이 발생한 지 44일 만이다. 이로써 57년간 이어온 가업(家業)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며 남양유업 창업주 일가 경영은 결국 마침표를 찍게 됐다. 44년간 유업계 발전에 기여해온 홍 회장의 말로치고는 불명예스럽다.
남라다 뉴스핌 산업2부 기자. 2021.03.09 nrd8120@newspim.com |
홍 전 회장은 지난 27일 오후 임직원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기업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며 "한편으론 제 노력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며 매각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남양유업의 몰락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가 전환점이 됐다. 갑질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남양유업은 1주에 100만원을 넘는 '황제주'로서의 명성을 누렸지만 제품 밀어내기 등 갑질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남양유업 브랜드 가치는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린 영향이 컸다.
불매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서웠다. 2012년 637억원이던 영업이익은 1년 만인 2013년 -175억원, 2014년 -216억원까지 떨어졌다. 그 이후로도 구설수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8년간 갑질 논란은 물론,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 사생활 논란, 경쟁사 비방 댓글 조작사건에 이어 올해 불가리스 파문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기업 이미지는 더 망가졌다. 주가도 폭락했다. 황제주이던 주가는 불가리스 사태가 터진 이후 1주당 30만원대까지 급락했다.
남양유업의 위기는 자초한 측면이 있다. 잘못된 리스크 관리가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갑질 의혹이 터진 직후 남양유업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언론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남양유업만의 독특한 경영 문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남양유업은 '홍원식 왕국'으로 불리며 전례를 찾기 힘든 '보스경영' 체제를 유지해 왔다.
현재까지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해소하지 못한 것도 보스경영과 무관치 않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다. 오너에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가 '리스크 관리' 실패를 낳았다. 위기 관리는 타이밍 싸움이다. 빠르게 위험 신호를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남양은 오너의 '입'만 바라보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이번 불가리스 파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식약처와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예방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반박했고 비판 여론도 들끓었다. 그럼에도 홍 회장은 20일이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남양은 오너 리스크가 컸던 기업으로 손꼽힌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뒤 주가가 40만원선에서 72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그만큼 '오너 리스크'가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남양유업 창업주 일가의 퇴장은 위기 관리에 둔감한 기업이 시대흐름을 읽지 못하고 시장 대응에 실패했다가 경영권을 넘긴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기업에게도 소비자 신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사는 소비자는 단순히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1980~2000년대생)들은 친환경적인 성분, 윤리적인 제조, 기업의 사회 공헌 등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며 기업의 제품을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착한 기업 상품은 홍보하면서도 나쁜 기업은 불매로 응징한다. 고객의 소비 행태가 뉴미디어 확산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업도 이에 상응하는 조직혁신을 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고 위기 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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