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내가 죽던 날'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죽은 이들의 진실을 찾아간다. 묵직하고 먹먹한 메시지가 세파에 지친 모두의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진다.
김혜수, 이정은 주연의 '내가 죽던 날'이 베일을 벗었다. 섬마을에 격리된 소녀가 사라지고, 진실을 좇는 형사, 침묵의 목격자들의 미스터리가 이어진다. 영화는 어딘가 닮아있는 현수(김혜수)와 세진(노정의)의 내면을 따라간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 탓에 다소 머리가 아플 정도지만, 돌고 돌아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결국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20.11.06 jyyang@newspim.com |
◆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스터리…김혜수·이정은·노정의 특별한 연대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매진했던 일도 잘 풀리지 않는 형사 현수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는 섬에 격리돼 있던 소녀 세진(노정의)의 자살 추정 사건의 종결을 맡게 되고, 섬으로 향한다. 말을 못하는 섬 주민 순천댁(이정은)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졌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현수는 세진의 죽음의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을 "운명같은 영화"라고 말할 만큼, 극중 현수와 거의 동일화된 연기를 보여준다. 남편의 불륜을 마주하고 "나는 정말 몰랐다"고 말하며 그 사실에 좌절하는 여자, 인생 모두를 바쳐온 일까지 못하게 될까 불안해하는 심리를 아주 성의있게 그려냈다. 특히 섬에 격리돼 어느 하나 의지할 곳 없던 세진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현수는 피해자와 심적으로 특별한 연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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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댁 역의 이정은은 극을 내내 이끌어가는 미스터리의 한 축을 맡는다. 세진의 행적과 행방을 좇는 현수는 계속해서 순천댁으로 귀결되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이정은은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 아리송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관객의 눈물을 터뜨린다. 신예 노정의도 갈팡질팡하는 세진의 심리를 잘 그려냈다.
◆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죽은' 사람들…박지완 감독의 작은 위로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현수에게 누군가는 "정말 몰랐냐?"고 묻는다. 남편은 유리하게 소송을 이끌기 위해 현수의 업무상 파트너를 쌍방 불륜 상대로 몬다. 세진 역시 범죄를 저지르고 죽어버린 아버지의 혐의를 "몰랐냐"고 다그침 당하고, 숨겨져있던 장부까지 증거로 제출했음에도 '뭔가 더 있을까' 감시당한다. 무고한 피해자가 끊임없이 의심당하는 상황.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기시감이 느껴진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20.11.06 jyyang@newspim.com |
현수와 순천댁이 세진을 놓을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누구 하나 생각해주지 않는 잔인한 상황. 세진은 죽음의 위기로 내몰리고 아무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현수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사라진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 발버둥친다. 세진이 그랬던 것처럼 '살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이 내내 눈물겹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비뚜름하게 적은 순천댁의 손글씨는 박지완 감독의 작은 위로다. 숱하게 상처받아 '죽은' 채로 살고 있는 모두에게 '맘 단단히 먹어.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라고 얘기한다. 이제는 무뎌졌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런 모두에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가만히 말하는 듯 하다. 오는 12일 개봉.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