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정치 사안에 뿌리를 둔 한국과 일본의 무역 마찰에 메모리 칩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중심으로 IT 제품의 생산 원가 상승과 공급망 교란에 따른 혼란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제한을 철회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각) 번스타인에 따르면 지난 9일 이후 1주일 사이 메모리 칩 현물 가격이 12%에 달하는 상승 기염을 토했다.
강제 징용 및 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한국의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이 반도체 업계에 중장기적인 충격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결과다.
불화수소를 포함해 일본이 한국 수출 제한 대상으로 지정한 4가지 반도체 필수 소재는 일본이 전세계 시장에서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한국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 대체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메모리 칩은 한국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라는 점에서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타격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책자들은 해당 품목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수출 제한 조치가 본격 시행된 이후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에 수출 승인이 한 건도 나지 않았다고 소식통을 인용,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 IT 업계가 3분기 부품 계약 시즌이 본격 시작되면서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높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반도체 칩을 매입하는 주요국 기업들은 가격 상승이 부담스럽지만 무역 마찰의 장기화에 따른 재고 감소 사태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노무라의 CW 청 애널리스트는 FT와 인터뷰에서 “일본의 수출 제한에 따른 생산 차질이 길어질 경우 공급망에 극심한 교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업체들이 확보한 반도체 소재 재고가 1개월치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를 포함한 국제 신용평가 기관은 최근 연이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미국 반도체 업체의 생산 차질 및 수익성 타격을 경고했다.
피치는 반도체 칩 가격 상승이 IT 제품 전반에 걸쳐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는 한편 기업 수익성과 판매 둔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보복 행위가 긴급 의제로 채택됐지만 양국은 날카롭게 대립했을 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WTO가 오는 23~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일반 이사회에서 이 사안을 논의하기로 한 가운데 일본 측은 물러서지 않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