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아베 신조(安倍信三) 일본 총리가 국가가 패소한 한센병 환자 관련 소송에서 항소하지 않겠다고 9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례적인 판단의 이유로 "(환자) 가족들의 고생이 더 길어지게 해선 안된다"고 말했지만, 일각에선 다가오는 선거를 위해 소송을 이용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사진= 로이터 뉴스핌] |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9일 네모토 다쿠미(根本匠) 후생노동상과 야마시타 다카시(山下貴司) 법무상에게 항소하지 않는 방침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기자단에 "판결 일부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도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환자)가족들의 고생을 더 길어지게 해선 안된다"고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원고 측이 항소하지 않는다면 구마모토 지방재판소의 판결은 확정된다. 원고 측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2일 항소기한까지 피해자들과 면회를 갖고 정부를 대표해 사죄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의 판단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달 판결이 나오지 전까지 △가족은 격리 대상이 아니었고 △배상청구권 시효도 소멸됐다고 주장해왔다. 아사히신문도 일본 정부가 항소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가, 이날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기사를 실었다.
한센병 소송은 과거 환자 가족들이 일본 정부가 진행한 격리정책으로 인해 편견과 차별 등으로 피해를 봤다며 구마모토(熊本) 지방재판소(법원)에 제기한 소송이다. 가족과의 이별을 강요당한 환자 가족 561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사죄를 요구했다.
구마모토 지방재판소는 지난달 28일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2002년 이후 피해가 있었던 20명을 제외한 원고에 총 3억7675만엔의 지불을 명했다. 환자 가족의 피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을 명령한 판결은 처음이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당초 일본 정부 내에선 항소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최고재판소(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다른 재판에 영향이 갈 수 있기 때문에, 항소하지 않고 판결을 확정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항소 포기를 주장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결정이 선거를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마타이치 세이지(又市征治) 사민당 대표는 아베 총리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선거를 노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 정부 관계자도 도쿄신문 취재에 "선거 중에 항소해도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선거에 대한 고려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다만 야권 측은 비판을 삼가는 분위기다. 자칫 항소 포기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국민민주당 대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솔직히 환영한다"면서도 "아베 총리가 과거 환자나 가족들과 직접 면회해 사죄해야한다"고 말했다.
한센병은 한센간균(나균)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감염증이다. 감염력을 약하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얼굴이나 손, 발 등이 변형된다. 1940년대 치료약이 등장하면서 주변인을 감염시키지 않을 수 있게 됐지만, 일본 정부는 1907년부터 1996년까지 한센병 환자를 격리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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