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UN사령부 독자 임무수행 기반 마련 나서
한반도 평화협정·전작권 등 美영향력 축소 우려한 전략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미국이 한반도 내 국제연합군사령부(UN사령부) '재활성화'에 나서고 있다고 14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배경에는 최근 평화협정 문제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반환 이슈로 한반도 내 영향력 저하를 우려하는 미국이 있다. 신문은 "미국은 향후 UN군이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우방'을 늘리겠다는 노림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UN사령부는 한국전쟁 휴전 후 유엔(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창설됐으며, 미국을 비롯해 해외전투병력 총 16개국·의무지원병력 총 5개국으로 구성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
"비무장지대는 UN사령부 관할이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그보다 앞선 9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상원 공청회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UN사령부·한미연합군·주한미군 사령관을 겸임하는 에이브럼스의 발언에 대해 전 한국군 장교는 "UN사령부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미군의 전략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이 전략을 UN사령부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라고 부른다. 이에 따라 미군은 UN사령부 내 주한미군 겸직자를 줄이는 한편, 한국과 미군을 제외한 UN군에 참가했던 16개국 출신을 늘리고 있다.
지난 여름엔 미군 제7공군사령관이 겸임했던 UN사령부 부사령관직을 캐나다에 넘겼다. 영관급 지위도 영국·호주·캐나다 등을 중심으로 미군에서 교대되고 있다.
여태까지 UN사령부는 비무장지대에서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 대응을 한국군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UN사령부가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우방'을 늘리겠다는 노림수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노무현 정부(2003~2008)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을 내걸며 북한에 접근하는 한편, 미국과는 선을 그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전작권 역시 한국군으로 환수하려 했다.
당시 한국 국방부 간부에 따르면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당시)은 한반도 내 미국의 영향력 저하를 우려했다. 이에 UN사령부 재활성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주변에 알렸다고 한다.
이후 들어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입장이었지만, 현재 문재인 정부는 다시 전작권 환수를 주장하고 있다. 또 주한미군 사령부가 수뇌를 맡는 한미연합사령부를 재편해, 한국군 장교를 사령관으로 하려 하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주한미군 분담금액과 관련한 협상에서도 증액을 거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환경영향평가 작업도 진행되지 않는 상태다.
전 한국군 장교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이 미국의 UN사령부 재활성화를 서두르게 하는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 美, 한반도 평화협정 경계…관련국에 UN사령부 필요성 강조
올해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 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해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의 4자협의를 시사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미국에 종전선언 실현을 거듭 요청했다. 중국은 이미 북한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협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신문은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주한미군은 이 같은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평화협정을 이행할 경우 UN사령부가 불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들은 UN사령부를 창설한 UN안보리 결의가 "지역에 따른 국제적인 평화와 안정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관련국에 "북한이 무장을 포기할 리가 없다"고 UN사령부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에 대해 "(미국은) 주한미군만 남는 사태는 피하고 싶어할 거다"라며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약해진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UN사령부에서 '파이브아이즈'로 불리는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재활성화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국가의 경우는 유사시 자국민 피난을 상정해 주둔요원을 늘리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한국과 지위협정을 맺고자 하는 국가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편 이 같은 움직임은 일본에 위치한 후방사령부와도 무관하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UN사령부 지위가 올라가면 일본의 후방사령부 역할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UN사령부는 당초 도쿄(東京)에 있었지만 1953년 휴전협정 후 서울로 옮겼다. 현재 후방사령부는 주일미군 요코타(横田)기지에 설치돼 있다. 일본은 한반도 UN사령부 내 11개국과 지위협정을 맺어 후텐마(普天間)비행장 등 주일미군 기지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한국군 관계자는 "UN사령부 참가국들은 후방사령부에 있는 요원도 늘리고 싶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 구출을 위한 거점이나 물자 집적지로서 이용하려는 국가가 나올 거란 견해다.
신문은 "다만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충분히 관여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미국은 매년 여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을 실시하고 있지만, UN사령부 내 16개국이 훈련에 초대된 것과 달리 일본 자위대는 참가한 적이 없다.
또 최근 냉각된 한일관계의 영향도 있다.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 일본 자위함기(욱일기) 게양과 관련된 문제로 해상자위대는 참가를 단념했다. 지난달에는 '사격통제 레이더'를 둘러싸고 양국 간 갈등이 불거진 상태다.
한 관계자는 "방위당국 간 교류도 끊길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