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기자 = 성적 표현의 역사 등을 고찰한 연구서적들이 일본 지자체의 유해도서 지정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고 17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일각에선 연구서까지 유해지정하는 건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달 30일 홋카이도(北海道)는 '에로만화 표현사(이하, 표현사)'를 유해물로 지정했다. 같은 달 23일엔 시가(滋賀)현이 '전국판 어느 날의 에로책 자판기 탐방기(이하, 탐방기)'를 유해물로 지정했다.
두 지자체 모두 '청소년 건전육성 조례'에 근거해 심의를 거쳐 결정했다. 심의회에서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은 유해물로 지정된 서적의 경우 18세 미만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서점 진열에서도 일반 서적과 차별을 둔다.
두 서적이 유해물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제목에 '에로'라는 단어가 포함 ▲여성의 나체나 성적행위가 그려진 표지·만화 컷 등이 인용됐다는 점이다.
신문은 "하지만 두 서적의 주제에 비춰봤을 때 유해지정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지자체에서 유해물로 지정된 '에로만화 표현사'(좌) · '전국판 어느 날의 에로 자판기 탐방기'(우) [사진=출판사 오타출판·후타바샤] |
'표현사'의 경우 만화에서 유방과 성기의 묘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연구하는 책이다. 저자인 기미리토(稀見理都)씨는 "성 묘사의 인용은 책 내용 상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의학서나 춘화(春畵)와 같은 학술서라 유해지정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탐방기' 역시 인터넷 보급에 따라 사라져가는 에로책 자판기의 현재를 좇는 르포르타주다. 일본잡지협회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한 연구서이며 필드워크의 역작"이라며 유해지정에 의아함을 나타냈다.
탐방기의 저자 구로사와 데츠야(黒沢哲哉)는 "우리 세대 땐 커다란 의미가 있는 존재였던 자판기가 사라져가고 있는 데도 관련 기록이 전혀 없었다"며 "남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쓴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서적들을 유해물로 지정한 지자체에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홋카이도 관계자는 "남녀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다수 인용됐다"며 지정 이유를 설명했다. 시가현도 "나체 등을 인용한 데다, 현에서 7년 전에 겨우 철거한 유해 자판기를 소개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했다.
오기노 고타로(荻野幸太郎) 꾀꼬리 리본(うぐいすリボン) 대표는 "유해지정되면 도서관, 시민강좌 등 공공장소에서 해당 서적을 다룰 수 없게 된다"며 "성표현은 오픈된 공간에서 논의하는 게 건전한 사회"라고 말했다. 꾀꼬리 리본은 일본에서 표현의 자유과 관련된 일을 하는 비영리법인(NPO)이다.
신문은 인터넷 상에서도 "연구용으로도 부적절한 내용이라면 어쩔 수 없다", "연구서도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등 찬반이 갈린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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