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기간에도 일한 것처럼..타 부서 실적도 내 실적
직인 날조하는 '브로커'도 나타나
[뉴스핌=서영욱 기자]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7월 3건의 고속철도 교량 정밀안전진단용역을 발주했다. 총 20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는데 이들 업체 모두 경력증명서를 위조한 퇴직자들이 속해 있었다. 20개 업체 기술자 140명 중 45명이 허위 경력 신고자였다. 철도공단은 3건의 입찰 절차를 모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을 퇴직한 공직자들의 비리행위가 대거 적발됐다.
이들은 자신이 일한 직장에서 경력증명서를 위조해 민간 기업에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재취업한 후 조작한 경력증명서로 1조원이 넘는 사업을 챙겨갔다. 이들은 경력증명서를 조작하기 위해 지자체장이나 공기업 사장의 직인을 위조하는 대범한 모습도 보였다.
20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경력증명서를 위조한 업체가 수주한 공사는 총 1781건, 총 1조1227억원에 달했다.
위조된 군수 직인 <사진=국토교통부> |
경력증명서를 위조하는 이유는 경쟁업체 보다 참여기술자 평가 점수를 더 높게 받기 위해서다. 설계, 감리 같은 건설용역 입찰에 참가하는 업체는 이를 수행할 건설기술자의 경력을 기초로 참여기술자 평가를 받는다.
건설기술자가 수행한 용역의 건수, 금액, 기간을 조금만 부풀려 허위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으면 경쟁업체 보다 참여기술자 평가 점수를 더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기술자에 대한 평가 점수가 전체 PQ 점수의 40~50%를 차지해 낙찰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들은 공로연수나 직위해제, 교육파견, 휴직으로 실제 근무하지 않았던 기간에도 실제로 건설 감독한 것처럼 경력을 속였다. 또 다른 부서에서 관리하는 건설공사에도 자신의 부서에서 감독한 것처럼 경력을 조작했다.
허위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증빙자료로 지방자치단체의 장, 공기업 대표 명의의 허위 경력확인서가 우선 필요하다. 이를 발급받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공기업 대표의 직인을 위조하거나 도용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공기업 직원 A씨는 비위 혐의가 적발돼 해임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공사 직인 관리자의 외출을 틈타 직인을 몰래 빼내 총 49건의 용역을 감독했다는 경력확인서를 조작했다.
도청 직원 B씨는 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으로 예산심의를 담당했다. 그는 지난해 8월 31건의 용역을 감독했다는 허위 경력증명서를 작성해 의회사무처 주무관 서명을 받았다. 그는 또 민원실에서 도지사 직인을 날인 받아 건설기술인협회에 서류를 제출해 경력을 인정받았다.
부패예방감시단 관계자는 "그간 증빙자료 확인 없이 경력확인서를 발급해주는 관행이 있었다"며 "건설기술인협회는 지자체와 공기업의 공신력을 믿고 아무런 사후검증을 하지 않은 경력확인서를 토대로 경력증명서를 발급해줬다"고 말했다.
위조된 도지사 직인 <사진=국토교통부> |
브로커가 개입된 정황도 드러났다. 퇴직자 5명의 허위 경력확인서의 도지사 직인을 위조해 재취업을 도우기도 했다. 이 외에도 퇴직 직전에 본인의 직위‧직급을 이용해 부하 직원에게 허위 경력확인서를 발급하도록 한 사례도 있었다.
또 퇴직 후에 신청한 경력확인서에 전관예우 차원에서 제대로 된 검증조차 없이 경력확인서를 발급해 주기도 했다.
부패예방감시단 관계자는 "지자체나 공기업 고위직은 부하직원의 감독 업무에 관여 정도가 미미해도 이를 자신의 경력으로 100% 인정받는 특혜가 있었다"며 "업계에서는 고위직 전관 출신들이 PQ 참여기술자 평가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게 돼 고액의 연봉을 받고 관련 용역 업체에 재취업할 수 있는 불공정한 구조로 운영돼 왔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서영욱 기자(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