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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카이저수염의 천재 괴짜화가, 살바도르 달리

기사입력 : 2017년12월19일 12:30

최종수정 : 2017년12월19일 12:3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8)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순응주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개인화되지 않는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앙드레 브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자신이 이미 천재로 태어났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도무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초현실적일 수밖에!
기계적인 것,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 일상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의 눈과 사고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현실 너머의 초현실과 의식 너머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달리의 특별한 표현방식은 틀에 박힌 20세기 예술의 흐름을 단숨에 전복시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보다 20세기 미술에 더 큰 족적을 남긴 미술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독창성과 상상력은 그림을 통해 이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그의 기벽들은 전설이 되었다. 죽기 전에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팔렸던 화가는 흔치 않다. 그러나 피카소와 함께 살바도르 달리는 살아 있는 동안 작품들이 비싸게 팔려나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생활의 유복함으로 따져본다면 그는 고흐나 모딜리아니의 정반대편에 있었다고나 할까!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넘어서 버렸다. 초현실을 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곳에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달리는 “초현실주의자로서 나의 성공은 내가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융합시키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고전주의로 돌아가야만 했다. 완성해야 할 작품이 하나 남아 있었고, 그 작품을 완성하려면 내 여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판이었다. 광기 아니면 삶!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생생히 살아 있을 나와 광인의 차이는 내가 광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라고 말했다.

달리의 화폭에는 그리고자 하는 오브제가 몽땅 녹아 들어가 흐늘거리고 있다. 마치 난로 옆에 놓인 치즈처럼 달리 옆에 가면 흐늘거리면서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매우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의 1931년 작품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은 흐늘거리는 시계의 이미지가 매우 강력하게 남아 있다.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에 녹듯이 흐늘거리는 시계들이 사막풍경에 늘어져 있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이 유명한 늘어진 시계 모티브는 카망베르 치즈에 대한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은 달리가 두통에 시달려 친구들과 같이 극장에 가기로 한 약속 장소에 부인 갈라만 보내고 집에 혼자 남아 우연히 그린 것이다.
당시 작업 중이던 풍경화에 그려 넣을 오브제가 떠오르지 않아 불을 끄고 작업실을 나가려는 순간 두 개의 흐늘거리는 시계가 보였다. 그 중 하나는 올리브 나무 가지에 척하니 걸쳐져 있었다. 이 작품을 순식간에 완성한 뒤 극장에서 돌아온 갈라에게 공개했다. 눈을 감게 하고 그림 앞에 앉게 한 뒤 하나, 둘, 셋을 세고는 눈을 뜨게 했다. 그림을 본 갈라는 자신이 어떤 공연을 보고 왔는지 완전히 잊을 정도로 감탄했다. 그림이 그녀의 조금 전 기억을 모두 앗아간 것이다.

‘기억의 지속’, 캔버스에 유채, 24×33cm 뉴욕 현대미술관 <사진=이철환>

달리는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 부적응 장애는 예술가로서는 축복받은 일이기도 했다. 달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장애를 자랑했다. 그는 완벽하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천재임을 태아 적부터 인식했다.
어느 날, 달리는 독일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시인 에드워드 제임스와 함께 자신이 존경하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방문하러 갔다. 달리는 편집증에 관해 발표한 자신의 글을 노대가에게 봐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무심하게 대했다. 달리가 물고 늘어지자 프로이트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완벽한 스페인 사람의 원형은 내 처음 봤소. 이 광적인 집요함이라니요!”

화가로서 달리는 잘 훈련된 지성과 놀라운 독창성, 기괴하고 파격적인 옷차림 등으로 유명하다. 자서전 또한 그의 그림처럼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는 달리가 1941년 서른일곱 살 되던 해에 직접 저술한 그가 남긴 유일한 자서전이다. 여기에도 독선적이고 교만한 태도로 꽉차있다. 그래도 그가 천재여서 읽힌다. 광기로 가득했던 20세기 대표 화가인 달리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불렀다. 달리는 자신이 태아였을 때를 기억한다고 큰소리친다. 풍부한 색감의 언어로 자궁 속의 세상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의 그런 태도가 역겹거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문장으로 읽힌다. 이것은 달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는 자신의 호적 신고를 하던 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교회의 종들을 울릴지어다. 허리를 구부리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여, 지중해의 북풍에 뒤틀린 올리브나무처럼 굽은 허리를 바로 세울지어다. 그리고 경건한 명상의 자세로 못 박힌 손바닥에 뺨을 기댈지어다. 보라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났도다!” 그리고 이런 글도 있다. “불행하도다. 그대들 모두여!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둘지어다! 내가 죽는 날은 사정이 다를 것이니!”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1904년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소도시 피게라스에서 태어났다. 달리의 이름 살바도르는 죽은 형의 이름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달리는 고집불통에다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6세 때의 꿈은 요리사, 7세 때는 나폴레옹이 되기를 꿈꾸었던 달리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이라는 대 참사 속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나갔다. 어쩌면 그의 독창성은 유년기 시절 태동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와 같이 자라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17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절에 달리는 다른 천재들을 만나고 친교하게 된다. 학창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 시인 로르카와 영화감독 부뉴엘을 만났다. 로르카는 달리를 천재로 인정하는 스페인의 시인이었다. 훗날 스페인 내전의 희생양으로 로르카가 어처구니없이 처형당하자 달리는 그 때의 심경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과 심지어는 프랑코를 추종하는 파시스트들까지도 로르카의 죽음을 이용하여 수치스러운 선전선동을 일삼았다. 오늘날 로르카를 보라! 어떻게 되었나? 그는 정치적 영웅이 되어 있다. 한때 그의 절친한 지기였던 나는 이제 신과 역사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는 바이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100% 순수한 시인이었으며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독재와 인권이 유린되는 시대의 가련한 희생양이었다.”

20대 초반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의 학생 시절, 달리는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보고 그림을 그렸다. 성모 마리아의 고딕 조각을 보고 ‘눈으로 보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라는 교수의 과제에 광고지에서 본 저울을 그려낸다. 자기 자신이 세기의 천재라고 확신하고 있던 달리는 고딕 조각의 성모 마리아를 저울로 그렸고, 그 그림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교수에게 “선생님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 고딕 성모상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울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파행적인 행동과 반정부 활동 혐의 등으로 그는 정학처분과 감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되는데 이유는 미술사 과목의 답안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심사위원보다 자신이 더 완벽하게 답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달리에게 파리는 고향 다음으로 각별한 장소이다. 20세기 초 파리는 세계 예술가들의 둥지이자 무덤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 파리에 가서 피카소를 만난다. 스페인 출신 두 거장의 만남이었다. 이미 대가인 피카소와 한참 혈기 방장한 달리는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평행선을 그으면서 살게 된다. 피카소 외에도 파리에서 여러 유명 인사들을 만나 그들과 친숙하게 지냈다. 그 중에서도 디자이너 코코 샤넬,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등과 같은 초현실주의 그룹들은 그의 활화산과 같이 타오르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달리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했다. 이전에 다다주의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이 이끌었던 초현실주의 그룹의 미술가와 작가들은 합리적 사고에 좌우되기 쉬운 개념이나 이미지를 거부하고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영감을 찾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신념을 좇는 것을 거부한 후에 달리는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배제되었다. 그는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열었다. 달리는 뉴욕에서 영화, 연극, 패션,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은 1945년 정신분석학적 스릴러 영화 《스펠바운드(Spellbound)》를 찍을 때 미술감독이 필요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살바도르 달리였다. 당연히 달리는 이 최고의 영화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달리는 옥상, 피라미드, 무도회장, 도박장의 네 장면에서 커다랗게 확대된 가위가 커튼에 그려진 눈을 자르는 장면을 제작했다. 그러나 달리가 처음에 계획했던 대부분의 기획안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라서 실행되지 못했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달리였지만 여자관계는 이상할 만큼 다른 여느 예술가들과 달리 매우 순수하고 깨끗했다. 일생동안 오직 한 명의 여인만을 사랑했는데 바로 갈라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달리에게는 갈라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을 바라보기만 하던 단테와 다르게, 달리는 갈라와 같이 행복하게 살았다. 갈라는 달리의 열쇠이자 하늘이고 땅이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갈라는 시인이자 달리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고, 10년 연상이었다. 하지만 둘은 바로 사랑에 빠지고 동거에 들어갔다. 둘은 만난 지 한참 후 엘뤼아르가 사망하자 정식으로 결혼하게 된다. 이후 갈라는 허공에 붕붕 떠다니는 천재 달리를 지상의 천재로 만드는 데 온 인생을 바친다.
갈라를 만나기 전의 달리와 그녀를 만난 후의 달리는 달랐다. 달리의 사랑은 유아적이고 맹목적이었다. 갈라는 자신과 결혼 후에도 다른 남자와 염문을 뿌리고 다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녀를 사랑하고 또 의지했다. 1930년 대 초부터 달리는 갈라 이외의 여자는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그림에 ‘갈라와 살바도르 달리’라는 서명을 했다. 왜 그림에 갈라의 이름을 넣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의 그림들은 거의 다 갈라의 피로 그려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89세를 일기로 갈라가 세상을 떠나자 달리는 생전에 그녀에게 선물로 사주었던 스페인의 푸볼 성에 안장했다. 그 후 달리는 파킨슨병과 자살 기도, 침실 화재로 인한 수술을 받으면서 매우 불안하고 힘든 노년을 보낸다. 그는 결국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 등으로 응급실을 오가다 1989년 1월 23일 여든 다섯 살 나이로 눈을 감았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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