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부임 이후 '문화계 포용' 약속 안 지켜져"
"'블랙리스트' 첫 버전, 2014년 6월…조윤선이 가져와"
"노태강·진재수 콕 찍어 '나쁜사람'…깜짝 놀라"
"세월호 사고 이후, 반대의견 제시하면 '역정'"
[뉴스핌=이보람·김규희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부임과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달라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오전 전원재판관 심리로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제 9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좌편향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를 위한 명단,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증인 신문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문체부 인사 전횡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 관련 내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유진룡 전 장관은 특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부임한 후 문화예술인들을 포용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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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유 전 장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정부 출범 당시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장관 자리를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안고 가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 사람들을 안고 가는데 힘써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장관직을 받아들였다는 게 유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정권 출범하고 상당기간은 약속이 지켜졌지만 김기춘 실장이 온 이후로는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또 "모철민 당시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통해 정부 반대세력에 대한 응징과 불이익을 요구하는 지시가 끊임없이 전달됐다"며 "이에 교문수석 비서실과 문체부의 갈등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문체부 업무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2014년 1월 29일 대통령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유 전 장관은 "정부 반대세력 안고 간다고 하지 않았냐. 그 일을 맡겨주지 않으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고 박 대통령은 "그럼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유 전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처음 확인한 정황도 드러났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6월 조윤선이 명단 하나를 가져왔다. 소위 '블랙리스트' 첫 버전이었다"고 말했다.
문건을 보고받은 유 전 장관은 1급 공무원들과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교문수석 비서실 등을 통해 전달됐던 지시는 거절했지만 해당 내용이 처음 문서로 만들어져 형식을 갖춘 만큼, 하는 '시늉'이라도 내기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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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유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명단까지 보내왔으니 우리도 성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구를 만들었다"며 "하긴 하되 제대로 하지 말자고 합의를 했는데 그 1급 공무원들이 제가 나간 후 잘렸다"고 증언했다. 이는 김기춘 전 실장으로부터 사표를 종용받았던 고위 공무원 6명이다.
그는 또 "그들이 징계받을 만한 사유가 전혀 없었고 문체부에서 장관이 바뀐다고 1급 공무원들이 사표를 냈던 일은 기억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1급 퇴직이 새로운 장관에게 임명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증언한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나쁜사람'으로 지목 당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 등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대로 박 대통령이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지적, 인사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대한승마협회 비리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7월경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며 "보고 끝나고 대통령이 수첩을 들여다 보면서 두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거론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제가 놀라서 '과장이나 국장을 잘 아는 건 장관이니 제게 맡겨달라'고 했더니 대통령이 역정을 냈다"고 덧붙였다. 6개월 전 문체부 인사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언을 했을 때와 반응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유 전 장관은 "그럼 증인이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 피청구인이 화를 내는 등 태도가 달라진 것은 언제냐"는 김이수 재판관의 질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세월호 사고가 하나의 동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그는 이밖에 사흘 전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해 취재진들에게 내놓은 문체부 관련 의혹 대부분을 탄핵법정에서 증언했다.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