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한은의 정책목표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최근 금융안정이 추가됐지만, 한은법은 물가안정을 한은의 통화정책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정책 환경은 물가만을 정책목표로 하기엔 너무 변했다.
김 총재는 신년사에서 과거 인플레 성향이 높았던 경제 환경에서 물가안정목표제는 유효한 정책이었으나, 요즘과 같이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국내외 경제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를 명목 국내총생산 (명목국내총생산 = 실질국내총생산+물가상승률)으로 전환해 경기부양을 꾀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소개했다.
사실 명목 국내총생산을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70년대 말 미드 (Meade), 토빈 (Tobin) 등이 중앙은행 정책목표로 명목 국내총생산을 주장했다.
당시는 인플레와 힘든 전쟁을 치르는 시기여서 그리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켈, 크루그만, 스티글리츠 등 저명 경제학자들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에만 과도하게 매달리지 말고, 고용 및 성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축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에는 선진 주요 중앙은행들 또한 기존의 물간안정 중심 통화정책 운용기조에서 탈피한 통화정책을 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 연준은 제3 및 4차 양적 완화조치에서 채권 매입량과 실업률을 연계했고, 일본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한 인플레이션의 상방 조정을 꾀하고 있다.
신임 영란은행 카니 총재도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에선 명목 국내총생산을 정책목표로 하는 편이 중앙은행에 통화확대정책을 펼 여지를 줌으로써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낮은 만큼 높은 물가상승률을 용인하여), 보다 효과적인 정책수단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를 물가안정에서 명목 국민총생산으로 하루 아침에 전환하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정책목표 전환에는 중앙은행뿐만 아니라 재정 및 통화정책 조정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요구된다. 또 물가안정 정책 목표에 대한 중앙은행의 코미트먼트에 대한 신뢰감 저하라는 위험도 따른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재정 정책의 여력이 소진된 선진 경제권에서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는 더욱 추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러한 선진 경제의 통화기조 변화의 여파로 세계 3대 기축통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상황에서 한은 총재의 고민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하겠다.
*본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서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나성섭 아시아개발은행(ADB) 남아시아 인간사회개발 디렉터 프로필
고려대학교를 거쳐 1993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이후 일본 국제기독교대학과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국제경제기구인 ADB의 남아시아 인간개발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경제, 인프라, 교육, 보건 등 폭 넓은 분야에 대한 정책 및 투자계획 입안 및 실행에 직접 참여한 생생한 현장 정책 경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