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한광옥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은 누구?

기사입력 : 2012년12월27일 17:50

최종수정 : 2012년12월27일 17:53

- DJ 대통령 비서실장 지낸 동교동계 핵심

[뉴스핌=노희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한광옥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동교동계의 핵심인사다.

이번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을 맡으며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김경재 전 의원과 함께 호남 출신 인사로 민주당이 아닌 박 후보의 품에 안긴 이른바 '교차 지지'세력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호남 출신이자 동교동계 핵심 인사라는 상징성이 영남 세력을 주축으로 탄생한 박근혜 차기 정부가 내걸고 있는 국민 대통합이라는 기치에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인선 배경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당선인이 27일 오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에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를 임명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100%국민대통합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인사말을 듣고 있는 한광옥 수석부위원장.[사진=뉴시스]

1942년 전북 전주 출생의 한 위원장은 1960년대 전국민권수호학생총연맹 위원장으로 학생 운동을 하는 과정과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대변인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1988년 평화민주당 시절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으로 박탈되면서 대표적인 동교동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민주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 부총채를 거쳐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과 부총재 등을 역임하는 등 야권의 대표적인 인물로 성장했고, 1997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협상 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제1기 노사정위원장에 이어 199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2001년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과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으며 영향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민주당을 탈당, 정통민주당을 창당해 서울 관악갑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번 대선과정에서는 지난 10월에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박 당선인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한 위원장의 영입에 가장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 있었다.

한 위원장은 당시 박 후보측에 합류하며 "지역과 계층 갈등, 세대 갈등 해소를 근간으로 대탕평책을 실현해 국민 대통합 바탕 위에서 남북통일을 이루는 과업에 한 몸을 헌신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전북 전주 출생(1942년) △ 중동고 △ 서울대 영문과 중퇴 △ 대한학생정치외교협회 회장 △ 11, 13, 14, 15대 국회의원(4선) △ 평화민주당 김대중총재 비서실장 △ 민주당(1992년) 사무총장, 최고위원, 부총재 △ 새정치국민회의(1996년) 사무총장, 부총재, △ 제1기 노사정위원장 △ 민화협 초대 상임의장 △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  새천년민주당(2001년) 대표 최고위원 △ 새누리당 선대위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 부위원장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한덕수, 대선 출마 여부에 "노코멘트"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대행은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양측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원조, 기술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했다. 이는 한국을 외국인에게 매우 편안한 투자 환경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대행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축소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2025.03.24.gdlee@newspim.com 한 대행은 "협상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상업용 항공기 구매 등을 포함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조선업 협력 증진도 미국이 동맹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FT는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고 한 대행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한 대행은 협상 과정에서 "일부 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도, 양국 간 무역의 자유가 확대되면 "한국인의 이익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여부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재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 대행은 6·3 대통령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nylee54@newspim.com 2025-04-20 13:43
사진
호미들 중국 한한령 어떻게 뚫었나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중국의 한류 제한령)이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가 중국에서 공연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8일 베이징 현지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3인조 래퍼 '호미들'이 지난 12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중국인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호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분위기를 만끽했다. 공연장 영상은 중국의 SNS에서도 퍼져나가며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 가수의 공연은 중국에서 8년 동안 성사되지 못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BTS도 중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때문에 호미들의 공연이 중국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미들 공연이 성사된 데 대해 중국 베이징 현지 문화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공연이 소규모였다는 점과 공연이 성사된 도시가 우한이었다는 두 가지 요인을 지목했다. 호미들이 공연한 우한의 우한칸젠잔옌중신(武漢看見展演中心)은 소규모 공연장이다. 호미들의 공연에도 약 600여 명의 관객이 입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800명 이하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정식 문화공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서는 공연 규모와 파급력에 따라 성(省) 지방정부 혹은 시정부가 공연을 허가한다. 지방정부가 허가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경우 중앙정부에 허가 판단을 요청한다. 한한령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의 문화공연은 사실상 금지된 상황이었다. 호미들의 공연은 '마니하숴러(馬尼哈梭樂)'라는 이름의 중국 공연기획사가 준비했다. 이 기획사는 공연허가가 아닌 청년교류 허가를 받아서 공연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한시의 개방적인 분위기도 공연 성사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한에는 대학이 밀집해 있으며 청년 인구 비중이 높다. 때문에 우한에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다. 게다가 젊은 층이 많은 만큼 우한에서는 실험적인 정책이 시행되어 왔다. 우한시는 중국에서는 최초로 시 전역에서 무인택시를 운영하게끔 허가하기도 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파격적인 정책이 발표되는 우한인 만큼, 한한령 상황임에도 호미들의 공연이 성사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의 한 문화업체 관계자는 "우한시가 개방적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호미들의 공연은 소극적인 홍보 활동만이 펼쳐지는 한계를 보였다"며 "공연기획사 역시 한한령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현지 문화콘텐츠 업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한국의 최정상급 가수가 대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어서 빨리 한한령이 해제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시그널은 아직 중국 내에서 감지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호미들의 중국 우한 공연 모습 [사진=더우인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4-18 13:1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