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 시장' 개막 속 양강 구도 뚜렷…현대 vs 삼성 '진검승부'
'10조 클럽' 견인한 승부처…장위·압구정 등 랜드마크 싹쓸이
7년 장기 집권의 비결…금융·브랜드·소프트 파워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대한민국 도시정비 시장의 판도가 재편됐다.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연간 도시정비 수주액 10조 원을 넘기며 이른바 '10조 클럽'의 문을 열었다. 2019년부터 이어온 수주 1위 행진을 7년 연속으로 이어가며 경쟁사의 거센 추격 속에서도 '도시정비 절대강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50조 시장' 개막 속 양강 구도 뚜렷…현대 vs 삼성 '진검승부'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장위15구역 재개발 사업을 따내며 올해 도시정비 누적 수주액 10조5,383억 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업계 전반을 짓눌렀던 부동산 경기 침체를 극복한 데다, 단순한 수주 규모 경쟁을 넘어선 '초격차' 경쟁력을 입증한 성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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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현대건설] |
2025년 국내 도시정비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과 치열한 경쟁이 공존했다. 전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약 2배 성장해 50조 원에 육박했으며, 신규 택지 고갈과 도심 재정비 수요 급증이 맞물려 대형 건설사들의 도시정비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이러한 시장 팽창 속에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이른바 '빅2'의 독주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양사의 수주액 합계만 약 20조 원에 달해 전체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등 '수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현대건설의 독주를 가장 위협한 것은 삼성물산이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올해 14개 사업지에서 약 9조2388억원을 수주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선별 수주 기조 속에서도 부산 촉진구역과 서울 핵심지를 공략하며 막판까지 현대건설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승부는 결정적인 순간 갈렸다. 업계에서는 양사의 희비가 엇갈린 분수령으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2구역' 재건축 수주전을 꼽는다. 당초 '래미안'과 '디에이치'의 맞대결이 예상됐으나, 삼성물산은 내부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기준과 조합의 입찰 지침이 상충한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반면 현대건설은 유연한 전략과 파격적인 제안으로 2조 7000억 원 규모의 대어를 단독 수주하며 격차를 벌렸다.
◆ '10조 클럽' 견인한 승부처…장위·압구정 등 랜드마크 싹쓸이
현대건설의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전방위적인 수주 전략도 주효했다. 그 대표적 예시가 장위15구역(예상 공사비 1조5000억원)이다. 해당 사업지는 장위뉴타운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업지로, 현대건설은 이곳에 두 차례 단독 입찰하며 강한 수주 의지를 보였고, 결국 수의계약을 통해 10조 클럽 가입을 확정 지었다.
질적 우위는 강남권에서 증명됐다. 현대건설은 압구정2구역 외에도 '개포주공 6·7단지' 시공권을 따내며 개포 내 현대건설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아울러 부산, 전주 등 지방 광역시의 랜드마크 사업지까지 선점하며 수도권과 지방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수주 잔고를 확보했다.
'빅2' 외 건설사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포스코이앤씨는 여의도와 강남권 진출을 확대하며 약 5조 9500억 원을 수주해 3위를 기록했고, GS건설은 잠실우성 재건축 등을 통해 5조 4000억 원대를 달성하며 '자이'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다. DL이앤씨는 수주 총액은 3조 원대지만 한남5구역(1조 7000억 원)이라는 알짜 사업지를 확보하며 실리를 챙겼고, 대우건설은 공공참여 재개발 위주로 3조 7000억 원을 수주하며 내실 경영에 집중했다.
◆ 7년 장기 집권의 비결…금융·브랜드·소프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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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현대건설] |
현대건설이 7년 연속 왕좌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도 관심이 모인다. 오랜 도시정비사업 경험이 축적되며 장기간 집권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고금리 시대의 '게임 체인저'가 된 것은 금융 경쟁력이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 경색과 금리 인상으로 조합원들의 금융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현대건설의 AA- 등급 신용도와 탄탄한 자금력은 강력한 무기가 됐다. 실제로 압구정2구역 수주전 등에서 LTV(담보인정비율) 100% 지원, 추가 이주비에 대한 금리 보전 등 금융 조건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
강남, 한남, 여의도 등 초고가 주거 지역에 '디에이치' 브랜드를 적용해 희소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네오 리빙(Neo Living)'이라는 미래 주거 트렌드를 제시했던 것도 관심을 끌었다. 수면 상태를 분석하는 'H 슬립', 명상 공간 'H 카밍부스' 등 헬스케어 기술과, 리모델링 대안인 '더 뉴 하우스' 등 혁신적인 기술 제안이 브랜드 고급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은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 차별화된 상품, 브랜드 파워라는 본원적 경쟁력이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도시정비 사업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필수적인 분야"라며 "단순한 입찰 제안을 넘어 각 사업지의 특성에 맞춘 최적의 조건을 제시하고, 층간소음 저감 기술 등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는 특화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에이치 브랜드 론칭 10주년을 맞아, 앞으로 준공될 디에이치 방배, 디에이치 한남 등을 통해 하이엔드 주거의 실체를 증명하고 업계 리더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설업계는 향후 도시정비 시장이 더욱 고도화된 경쟁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2026년 이후 시장은 단순한 브랜드 인지도를 넘어, AI(인공지능)와 로봇, 바이오 기술이 접목된 '주거 서비스' 경쟁력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남을 넘어 여의도, 성수, 목동 등지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요구가 확산됨에 따라,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삼성물산의 '래미안', DL이앤씨의 '아크로' 간 자존심 대결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자금력과 브랜드, 기술력을 모두 갖춘 상위 건설사로의 쏠림 현상은 불가피하다"며 "현대건설이 구축한 10조클럽 이후, 경쟁사들은 이를 넘어서기 위해 차별화된 수주 전략과 기술 혁신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