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 가능성 크지만 리더십 타격과 정책 추진 동력 저하 불가피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일명 '화이자 스캔들'로 유럽의회의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음달 실시될 투표에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유럽의회 내 우파와 좌파 진영 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망했다.
이로 인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이 동력을 잃고, 그의 리더십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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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루마니아 출신의 극우 성향 유럽의회 의원인 게오르게 피페레아는 이날 FT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 발의에 필요한 72명 의원의 서명을 확보했다"며 "불신임안을 오늘 중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불신임안은 근본적으로 (EU 집행위와 위원장의 정책 결정과 관련된) 투명성을 확보하고 진정한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속한 유럽의회 내 최대 정파인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 소속 일부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페레아 의원은 불신임안이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전망하면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 건설적이고 근거 있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며 "집행위는 우려 사항에 해결하고 정당한 이유와 설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U 집행위원장을 축출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 즉 720명 중 48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번 불신임안의 핵심 근거는 화이자 게이트다.
지난 2021년 2월 코로나 팬데믹 당시 EU 집행위는 EU 전체를 대표해 협상에 나서 백신을 제조하는 미국 화이자와 350억 유로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전 세계가 백신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에 18억회 분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했다. 이는 폰데어라이엔 1기 집행위의 가장 큰 성공으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계약이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협상 내용과 절차 등에 대해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EU 집행위 측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 간 협상 관련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EU 집행위는 이를 거절했다. NYT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EU 집행위는 "당시의 문자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며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메시지가 '일시적인 특성' 때문에 공식 문서로 간주될 수 없으며 중요한 정보가 담긴 메시지가 존재했다면 적절하게 보관됐을 것이라고 했다.
EU 법원은 지난 5월 "EU 집행위가 문자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고 한 이유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메시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EU 집행위는 문서 접근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EU 기본권 헌장에 명시된 '적절한 행정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유럽의회 안팎에서는 이번 불신임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해 유럽의회 인준 투표에서 찬성 401표를 얻어 연임에 성공했다. 유럽의회 내 중도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FT는 "유럽의회에서 집행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성공한 적은 없지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999년 실시된 불신임 투표에서 자크 상테르 위원장이 생존에 성공했지만 이후 부패 의혹과 집행위 운영의 투명성 결여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결국 사임했다. 그 이후 불신임 투표는 4번 실시됐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