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6년에 걸쳐 직접 집필, 출간 앞당겨져
'나의 인생' 가정사·연애 경험·유배 시절 담아
교황의 행보와 그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책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선종했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자서전 '희망'과 '나의 인생'을 펴냈다. 두 자서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삶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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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자서전 '희망'. [사진 = 가톨릭 출판사] 2025.04.21 oks34@newspim.com |
"온유한 사랑은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진정한 힘입니다. 가장 강인하고 용감했던 이들이 바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도 온유한 사랑으로, 또 용기로 이 싸움을 이어 갑시다. 여러분도 이 길을 걸어가십시오. 온유한 사랑과 용기로 이 싸움에 동참하십시오." - 자서전 '희망'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6년간 직접 집필한 '희망'은 역사상 최초의 교황 자서전으로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동시 출간됐다. 원래 교황 사후에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5년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가톨릭 교회의 희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출간이 결정되었다. 희망이 필요한 이 시대에 전 세계인들이 사랑과 용기를 품고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부모 세대가 겪은 전쟁의 아픔을 비롯하여 유년기의 다양한 경험이 소개된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는 젊은 시절의 고민, 사제 성소를 식별하고 예수회 공동체에서 열정적으로 사목 활동을 했던 일들을 회고한다. 또 교황 선출 직전의 비하인드 스토리,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이유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살게 된 배경, 교황 재임 중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 다양한 이야기가 배치되었다. 또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도 수록되어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린 시절부터 교황이 되기까지의 개인적인 여정을 다루는 과정에서, 특히 젊은 시절에 했던 실수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것을 반성하고 있다. 그는 "제가 그날 한 행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가난한 이들을 향한 무심함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담담히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 또한 "우리는 젊은이들을 판단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절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 진지하게 대하지 않은 것, 가슴에 불을 지피지 못한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
특히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교황이 사용하는 쉽고 따뜻한 문체다. 그는 다양한 예술 작품과 여러 예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며, 누구나 삶에서 느껴 보았을 법한 것들을 친근하게 전한다. 특히 남수단 정치 지도자들의 발에 입을 맞추며 평화를 간청했던 모습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한 인간의 이토록 작고, 겸손한 섬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교황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희망을 품고 미래를 꿈꾸는 일, 이 땅의 분열을 딛고 평화를 이룩하는 일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밝히며, 우리가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 성격을 넘어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는 교황의 초대장 같은 느낌을 준다. 교황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논쟁거리에 대해 신학적이고 교리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의와 평화,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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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자서전 '나의 인생'. [사진= 윌북] 2025.04.21 oks34@newspim.com |
교황이 오랜 시간 공들인 이 책의 번역을 위해 서울대교구 이재협 신부와 '바티칸뉴스' 한국어 번역 팀이 참여했다. 그간 한국 신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식을 전해 온 그들의 애정이 책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그 결과 원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방대한 주석이 추가되어, 한국 독자들이 다소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유럽 및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 교황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나 자주 언급하는 표현 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교황은 책의 마지막에 자신을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이라고 표현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서 더 나은 길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지난해 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나의 인생'에서 교황은 80여 년 세월 동안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세월의 굴곡과 함께 이어온 자신의 삶을 풀어냈다. 3세 무렵 겪은 제2차 세계대전 및 유대인 학살부터 글로벌 경제 위기, 코로나19 팬데믹과 오늘날 전쟁까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짚으면서 인생의 여정을 돌아봤다.
아울러 어린 시절 가정사, 사제가 되기로 한 뒤 겪은 어머니의 반대와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흔들렸던 경험도 고백했다. 외로웠던 유학 시절과 우울하고 어두웠던 유배 시절, 주교로 깜짝 임명된 이후 겪게 된 국가·세계적 위기들에 대한 고뇌도 들어 있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