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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공직을 꿈꾼 이종배…학창시절부터 키운 '리더십'

기사입력 : 2024년09월02일 16:00

최종수정 : 2024년09월09일 09:25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국민의힘 4선 중진 이종배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전 삶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2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모범생' 이종배의 학창시절 꿈과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리더'로서의 삶을 꿈꿔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1957년생으로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과정을 거쳤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충주시장, 행정안전부 2차관, 음성군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22대 총선에서 충주시에 출마해 내리 4선을 지냈다.

이종배 국회의원.[사진=뉴스핌DB]

다음은 이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송기욱 기자. 이하 송)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종배 의원. 이하 이)22대 총선이 끝나서 원구성이 됐고 상임위도 배정이 됐습니다. 이제 정기국회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정기국회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상임위에서 활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법안소위도 하고 전체회의도 하고 또 이제 결산해야지 될 때고요. 또 정기국회 앞두고 우리 당 워크숍 같은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준비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정부 질문에 정기국회에서 참여하려고 그걸 준비하고 있는데 굉장히 바쁩니다.

-(송)본격적으로 지금 질문 이어가 볼게요. 충주에서 태어나셔서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거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릴 적 의원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이)제가 태어난 곳이 이제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산골짜기 입니다. 길 끝에 있는, 길이 가다가 더 이상 못 가는, 그런 동네에서 태어났고 충주에서 중학교 다니고 청주에서 고등학교, 대학은 서울. 이렇게 중학교 때까지는 충주에서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육자였습니다. 7남매 되는데 그중에서 제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에 들어가니까 7남매 중에서 한 명은 공무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키워주셨어요. '공직자다. 넌 나중에 대통령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다른 분들이 와서 네 꿈이 뭐냐 하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대통령이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컸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학교에 다니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이)에피소드도 많겠죠.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육자시니까 학교 부근에 사셔서 따라서 학교 부근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살고 학교 운동장에서 살고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이제 같이 재미있게들 많이 운동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렇게 지냈고요.
중학교 때는 제가 충주중학교를 통학했습니다. 기차로 통학을 했는데요. 기차가 제 시간에 들어오는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 11시에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제 또 역 앞에서는 제가 자전거 타고 다니고 깜깜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에서 어떤 분이 이 나무를 긴 나무를 지고 오는 걸 몰라서 그 나무가 제 이마를 쳐서 졸도를 해서 그 이튿날 깨어난 적도 있습니다.

-(최)그때는 가로등도 없었을 거고요. 칠흑같이 어두웠을 텐데

▲(이)고등학교 때는 제가 하숙을 했는데요. 하숙비가 이 쌀 일곱 말입니다. 집에서 그 쌀을 지고 다니던 생각도 나네요.

-(송)쌀 일곱 말이면 요즘 이제 기준으로 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요

▲(이)요즘 요즘 기준으로 한 15만 원 정도 되죠. 식사까지 다 제공하고 그러니까 글쎄요. 지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송)그렇네요. 이제 식사까지 된다고 하면 그렇게 엄청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 대학생들 자취하는 비용이 월 40~50만원 정도 하니까 이제 그건 식사 제외하고서도 이렇게 하니까 저렴한 편이네요.

▲(이)그거 따지면 저렴하죠.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물가도 비싸지 않았고 받는 것도 현금 없으면 이 쌀로 갖고 오라고 해서 쌀로 갖다 주기도 하고 오셨으니까.

-(송)이제 저희는 이제 보통 이제 자취라는 걸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시기가 대학교육 이후에 하다 보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당시에는 좀 이렇게 하숙이나 자취를 좀 많이 하면서 통학을 좀 많이 했었나요?

▲(이) 교통편이 좋지 않으니까 통학보다 자취, 하숙 그런 걸 많이 했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많이 하셨구나 자취하시는 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청주에 자취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자취하는 친구를 위해서 누나가 와서 밥을 해준다든지 뭐 그렇게도 하더라고요.

-(송)상상하면 약간 아름다운 그림들인데요. 가족이 가족 챙겨주는 그런 모습.

▲(이)그렇긴 한데 이제 누나의 또 삶은 별로죠. 요즘 같으면 그렇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겠죠.

-(송)공부를 잘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목표들이 다 있잖아요. 반 1등을 넘어서 전교 1등. 다들 꿈꾸고 하는데 혹시 의원님 학창 시절 최고 성적은 어느 정도셨는지 궁금해요.

▲(이)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했어요. 상위 1, 2등 또는 전체에서 한 5등 안에 저희들이 현재 중학교 고등학교는 한 400~500명 되거든요. 한 학년이 그때 5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 벽에다가 쭉 붙여놔요. 1등서부터 꼴찌까지 쭉 붙여놓습니다.

-(송)대학생으로 넘어가 보면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셨잖아요.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대학교 시절에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이)대학을 입학할 때도 제가 행정학과를 가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공무원 꿈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 행정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서울대 행정학과가 좀 제 실력으로는 좀 어려워서 우리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그래도 다음 두 번째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인데 이제 법대 안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고대법대면 괜찮다. 사회적으로도 명망도 있고 괜찮다고 해서 제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게 됐습니다. 제 꿈이 계속 이어진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리더 기질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의 어려운 사정도 제가 잘 살펴주기도 하고 잘 이렇게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고 또 공부 잘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좀 잘못하는 학생이 가르쳐달라고 그러면 제가 잘 가르쳐 주고 집에도 놀러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는 그냥 그대로 지냈지만 2학년 때부터 전공 과목 들어갈 때는 과대표도 하고 그랬습니다. 과대표하다 보니까 그때 1975년도 그때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긴급 조치가 떨어지고 막 그랬거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 안에 탱크가 들어오고 그랬는데 제가 과대표를 하다 보니까 항상 앞장서서 뛰어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북경찰서까지도 끌려다녔고 저는 뭐 재판까지 받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앞장서 봤기도 했고 그러다가 제가 제 정체성을 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집에 와서 철학 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다시 복학해서 그때서부터는 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만에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송)2년이라는 기간은 남들보다 빨리 합격하신 그런 걸까요?

▲(이)네 그냥 중상 정도 그렇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군대에 가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장교로 가는 게 좋겠다 소대장을 해보겠다. 그래서 제가 지망을 해서 가서 전방에 가서 소대장 까지 훈련 기간만 합쳐서 한 39개월, 3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 기간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그런 기간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합니다.

-(송)혹시 군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이)홍천 11사단 홍천 훈련 많은 곳으로 유명하죠. 1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 있게 지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송)혹시 군생활 에피소드는 좀 있으신가요? 이제 다들 남자라면 이제 하나씩 갖고 있는 게 있잖아요.

▲(이)군대 있을 때 제가 잘했던 것들이 숫자를 보고 문자로 바꾸고 문자를 숫자로 바꾸고 이런 음어거든요. 대표를 지냈기도 했고 저희가 이제 조금 영어를 한다고 해서 미군하고 같이 합동으로 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미군들하고 아주 한 1~2개월 동안 지냈던 것이 뜻깊다 생각하고요. 요즘도 군대에서 같이 있던 그런 사병들 또는 다른 부대에 있던 장교들하고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송)벌써 알겠는 게 학창시절 때도 그렇고 대학교 생활하실 때도 그렇고 군 생활도 마찬가지고 리더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이)그래서 제가 행정고시 합격하고 어느 부처를 갈 것인가 자기가 희망을 하거든요.희망을 할 때 제가 내무부로 가서 군수시장을 해야 하겠다 그래서 내무부를 지망했습니다.그 당시에 제일 커트라인이랄까 경쟁이 센 데가 이제 경제기획원, 예산실이 좀 셌고, 내무부도 센 편이었습니다. 군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의 소망이었거든요. 합격생들보다 이제 부모님이 와서 고향에 와서 군수 한번 하라 이런 걸 자꾸 요구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다행히 돼서 저는 그 젊은 나이에 충북 음성군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최)그때가 몇 살 때십니까?

▲(이)그때가 39살입니다.

-(최)그럼 39살에 이제 군수로 가셨을 텐데 그러면 나이 훨씬 더 많으신 분들이 말하자면 이제 같이 일하시는 분일 텐데 어떻게 융합을 하셨어요?

▲(이)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지만 리더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되거든요. 또 리더는 갑이 아니고 을이라 생각하고 대신 리더는 결단할 때는 결단을 해줘야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그렇게 제가 잘 모시면서 지냈고 또 기관장, 단체장들 이런 분들하고 소통을 잘해서 수시로 식사도 하고 간담회도 하고 그분들은 그 당시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어린 저를 항상 상석에 앉으라고 그러면서 군수가 아니고 성주라고 이렇게 불러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하시면서 예우를 해주셨는데 그럴수록 제가 더 낮은 자세로 그분들을 모시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또 제가 음성군수 한 것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충주시에서 국회의원 하는데도 충주시 내에 음성 출신이 상당히 있습니다. 한 1~2만 정도는 되는 거로 제가 생각되는데 그 분들이 우리 음성군수 하셨던 분이고 또 고향에 누구한테 얘기 들으니까 음성군수할 때 잘해주셨다고 그러면서 저를 지지를 많이 해주신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의원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어릴 때부터 이제 공부를 잘하셨고 또 아버님께서도 이제 교육계에 계셨고 자연스럽게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도서관이 옆에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 이제 이런 꿈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릴 때부터 쭉 지금까지 이제 정치인, 행정인, 그리고 이제 정치인의 삶을 살아오시는 동안에 이끌어주셨던 멘토를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이)주위에서도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저를 만들어주신 분은 부모님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어릴 때부터 남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그런 말씀 그런 것들이 이제 부모님이 생각하실 때는 뭐 여러 가지로 도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공직자로서 공익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건 공직자 아니겠느냐 그런 걸 많이 심어주신 것 같고요.
또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말씀을 주셔서 저는 그것들이 제가 정치인으로서 우리 시민과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늘 진정성 있게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요.
정치할 동안도 부모님이 계속 생존해 계셨습니다.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들이 제 정치하는 거 보시면서 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수시로 얘기도 해 주시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저희의 정치의 하나의 길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타인을 위한 삶, 남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정직하게 앞에서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에 행정을 하시고 그리고 또 정치를 하시고 이제 그런 일관성 있는 어떤 그런 말씀에 어떤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정치에 입문하시고 나서는 또 어떤 정치적인 멘토 혹은 롤 모델은 있으셨습니까?

▲(이)저는 어떤 한 분을 따라서 이렇게 롤 모델로 삼지 않고 내가 어떤 정치인이 돼야 되느냐를 늘 생각을 하고 있죠. 정치인으로서는 저희가 이제 정치 신조, 신념을 무신불립 으로 해서 신뢰를 잃으면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인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다.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민들과 약속한 걸 꼭 지켜야 되고 나 스스로도 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늘 그런 걸 염두하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오고 있습니다.

-(송)공직자로서 이제 꽤 오랜 삶을 살아오셨고 이제 여러 직책들을 거치셨잖아요. 공직자로서의 이종배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제 본인 스스로 돌아보셨을 때.

▲(이)저는 그래도 공직에서 행정고시 합격하고 최고로 올라가는 게 차관이거든요.차관까지 제가 올라갔고 동기들에 비해서 좀 빨리 승진을 한 편이었습니다.저는 이 일에 이 일을 맡기면 최선을 다해서 전념해서 일을 처리하는 그런 스타일이었고요.또 승진을 하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이렇게 또 경험하고 다시 또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내무부가 나중에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는데요.그 이후에도 승진을 할 때는 지방에 가서 지방에 가서 또 근무하고 그래 근무하다 보면 또 중앙에서 불러들이면 다시 또 보고 이걸 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저같이 이렇게 세 번 지방과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한 사람도 상당히 드물 거라고 생각이 되고요.또 저희 동기들이 이제 내무부에 온 동기들도 군수를 다 못한 사람도 있어요.군수 1995년도에 지방자치가 실시가 돼서 자치단체장 선거가 처음에 있었거든요.

▲(이)95년도면 제가 공직에 나가서 15년 정도 이렇게 된 기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군수로 승진할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군수를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었고 군수를 하신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조금 빨리빨리 제가 승진을 했고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제 삶은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도 제가 누구를 부리고 시키는 것보다도 앞에서 모범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도 빨리 된 것 아닌가 주위에서도 이종배가 승진해야 된다 그런 여론이 형성됐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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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영풍, 상호 비방하며 지분 전쟁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75년간 공동으로 경영을 이어가던 고려아연과 (주)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 파트너스와 손잡은 영풍 측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배임, 주가 조작 등 혐의로 법적 조치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영풍 측이 환경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수시로 위반하는 등 경영 실패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며 양측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는 평가다. 향후 경영권 분쟁의 관건은 양측 우호 지분(백기사)과 소액주주, 국민연금과 영풍정밀 지분 확보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 [사진=고려아연] ◆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 입장문 발표..."영풍·MBK 공개 매수 공식 반대"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은 18일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은 당사의 주주인 ㈜영풍이 기업 사냥꾼 MBK 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 매수에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약탈적 기업 사냥꾼이자 투기 자본인 MBK와 결탁해 공개 매수를 진행하는 당사의 주주 영풍은 그동안 석포제련소를 운영해 오면서 각종 환경 오염 피해를 일으켜 지역 주민들과 낙동강 수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왔다"고 비판했다. 또한 "빈발하는 중대재해 사고로 최근 대표이사들이 모두 구속됐고, 또 다른 문제인 카드뮴 누출 등 환경 오염으로 현재 구속된 대표이사들에게 추가로 실형이 구형되는 등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고 있고, 특히 사업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 운영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아울러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는 그동안 수차례 국내에서 시장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과도한 배당금 수령 등을 통해 투자금 회수에만 몰두하는 등 약탈적 경영을 일삼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주목할 점은 MBK 파트너스는 영풍 및 그 특수 관계인의 지분에 대해 콜 옵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약탈적 자본과 결탁한 공개 매수자들이 당사 경영권을 인수한 다음 당사의 경영권을 해외 자본에 재매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렇게 되면 국가 기간산업 및 이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 기술과 역량이 해외로 유출되는 엄청난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영풍 본사 전경. [사진=영풍] ◆ 영풍·MBK, 고려아연 공개 매수 발표...고려아연 "적대적 약탈적 M&A" 반격 고려아연과 영풍의 이번 경영권 분쟁은 지난 13일 MBK 파트너스와 영풍의 고려아연 공개 매수 발표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MBK 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약 7~14.6%(144만 5036주~302만 4881주)를 공개 매수한다. 이번 공개 매수는 10월 4일까지 진행되며 공개 매수가는 주당 66만 원이다. 공개 매수 대금은 약 2조 원이다. 영풍 측은 "지난 75년간 2세에까지 이어져 온 두 가문 공동 경영의 시대가 이제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공개 매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영풍이 MBK 파트너스와 손잡으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다. 영풍은 공개 매수 발표 이후 최윤범 회장을 대상으로 회계 장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최 회장의 배임, 주가 조작 등 5가지 혐의를 주장했다. 이어 고려아연이 공개 매수 기간 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려아연은 앞서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영풍의 지배력을 낮춰온 바 있다. 최윤범 회장은 현재 우호 지분을 합쳐 3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해 LG와 한화, 현대차 등 대기업을 우호 세력(백기사)으로 포섭했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측 지분은 오너가를 합해 33.1%다. 양측 모두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소액주주가 가진 27.4%, 국민연금이 보유한 7.8% 지분이 관건이다. 이 같은 상황에 양측이 법적 공방과 함께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영풍과 MBK 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영풍정밀에 대한 공개 매수도 진행한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의 지분 1.58%를 가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MBK 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의 공개 매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즉각 공시를 통해 "기업 사냥꾼의 적대적 약탈적 기업합병(M&A)"이라고 반격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결탁한 MBK 파트너스와 같은 기업 사냥꾼들은 투자 수익률 극대화라는 단기적인 관점으로 기업에 접근하는 만큼 배터리 등 대한민국 전략 산업과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중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증대시키고자 하는 당사를 정상적으로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imsh@newspim.com 2024-09-1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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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로봇 '개미' 순찰·배달 시작 [서울=뉴스핌] 김양섭 기자 = 자율주행로봇 전문기업 로보티즈(대표 김병수)는 양천구 소재 공원에 자율주행로봇 '개미(GAEMI)'를 도입해 수거·순찰·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7월 실외이동로봇 운행안전인증을 획득한 오픈형 타입의 '개미'는 이번 양천구에서 첫 운행을 시작했다. 넓은 적재 공간과 개방형 구조로 다양한 작업이 용이하게 설계된 오픈형 타입의 '개미'는 공원 내 재활용품 수거 서비스 및 안전순찰을 수행할 계획이다. 서울경제진흥원의 지원 사업 중 첨단기술이 적용된 혁신제품· 서비스를 시정현장에 활용 및 실증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테스트베드 서울'에 선정돼 양천구와 함께 2024년 실증을 진행한다. 또한 2025년부터는 '스마트로봇존'을 통하여 본격 기술사업화를 진행하는 것으로 각각 최종 선정됐다. 이를 통해 양천구 내 '양천', '파리', '오목' 총 3개소의 공원에서 각 8대씩 최종 24대의 '개미'를 운용하게 된다. 공원 곳곳에 배치된 QR코드를 통해 호출하면 해당 위치로 도착 후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방식이다. 플라스틱, 종이, 캔 등의 수거함이 구별된 '개미'들은 재활용품 수거 이후 자동으로 충전 스테이션으로 복귀한다. 또한 수거함이 가득 차면 '개미'는 스스로 집하장으로 이동해 재활용품을 비운다. 이외에도 '개미'는 야간 공원 이용객들의 안전을 더욱 강화한다. 일정 시간이 되면 지정된 순찰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화재, 도난 등 긴급 사고 발생 시 즉시 감지하고 관제센터에 실시간으로 전송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로보티즈는 '개미'의 자동화된 수거·순찰 로봇 서비스의 도입을 통해 도심공원의 환경 미화 문제와 더불어 고령화된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쾌적한 녹지 환경을 조성하는데 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개미'는 공원 인근 중소상공인과 협의를 거쳐 공원 내부까지 상품을 배달해주는 로봇 배달 서비스까지 수행하며 공원 내 편의성 더욱 높일 예정이다. 추가로 도입될 배달 서비스까지 포함하여 2025년까지 총 24대로 확장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로보티즈의 자율주행로봇 '개미'는 올해 1월 국내 최초 실외이동로봇 운행안전인증 1호를 획득하며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도심지, 캠퍼스, 공원, 아파트, 병원, 호텔, 캠핑장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오랜 기간 실증을 거듭하며 쌓은 방대한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능 향상과 최적화를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본격적인 자율주행로봇 양산 납품과 배송 생태계를 조성할 예정이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이번 서비스 도입을 통해 공공분야에서 자율주행로봇 '개미'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인력 효율화를 기대한다"라며 "앞으로 로보티즈의 현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자율주행로봇 '개미'가 활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로보티즈] ssup825@newspim.com 2024-09-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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