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감독으로 월드컵 우승… 사망원인 공개 안돼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독일의 축구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가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베켄바워 유족 측은 9일 오전(한국시간) 독일 DPA 통신을 통해 "남편이자 아버지인 베켄바워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잠들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조용히 애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질문은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바켄바워. [사진 = 로이터] |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13살 때인 1958년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모두 네 차례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려놨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1972년과 1976년 발롱도르를 품은 바 있다. 주 포지션은 홍명보 울산 HD 감독의 선수 시절 위치와 같은 리베로였다. 베켄바워는 독일 국가대표로도 103경기 뛰었고 국가대표팀에서는 주장으로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뛰던 바켄바워. [사진 = 로이터]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독일 감독 바켄바워(오른쪽). [사진 = 로이터] |
'카이저'(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1977년 미국 코스모스 뉴욕에서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뛰었다. 1982년에는 고국 무대에 복귀해 함부르크 SV에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안겼다. 1983년 38세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우승, 주장과 감독으로 각각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베켄바워는 브라질의 마리오 자갈로,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과 함께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거머쥔 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뮌헨에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회장직을 맡았고, 2002년부터는 명예회장을 지냈다. 2006년 월드컵을 독일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도 역임했다.
2006 독일월드컵을 유치한 바켄바워(오른쪽)와 공동 조직위원장 펠레. [사진 = 로이터] |
그러나 2006년 월드컵 유치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독일 축구협회( DFB)의 조사에 이어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베켄바워는 부패 혐의로 스위스 법원에서 재판받았으나 2020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했다.
하베르트 하이너 뮌헨 회장은 "슬픔이 정말 크다. 베켄바워가 뮌헨에 남긴 업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은퇴 이후에도 뮌헨에 족적을 남겼다. 위대한 유산이"고 애도했다. 1990년 독일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로타어 마테우스는 "베켄바워가 건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충격은 컸다. 그의 죽음은 독일 전체에 큰 손실이다"라고 슬퍼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 독일 '빌츠'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베켄바워 별세 소식을 전했다. 베켄바워가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회장으로서 몸을 담은 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해 여러 독일 팀들 등 각국 명문 클럽들까지 애도 메시지를 보냈다.
psoq133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