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우리는 그들을 무자비하게 망가뜨릴 것이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우리 국민에게 가져온 이 암울한 날을 되갚아 주겠다."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 발의 로켓을 발사하고 육·해상에서 공습을 개시한 다음 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대국민 연설에서 한 전쟁 선언이다. 가자 지구에 '피의 복수'를 천명한 것이다.
네타냐후는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당장 떠나라고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가자 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라고 불릴 만큼 고립된 지역인 데다 유일한 탈출로인 이집트마저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약 220만 명으로 알려진 주민들은 꼼짝없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에 갇혀 버렸다.
왼편에 빨간 원으로 표시된 지역이 가자지구. 오른편은 가자지구 위치를 확대한 지도. [사진=구글 맵] |
◆ '나라 없는 슬픔' 사면이 막힌 가자 지구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위치한 길게 뻗은 가자 지구는 면적 약 360㎢로 충청남도 서천군(366㎢)과 비슷하고 서울 면적(605㎢)의 약 60% 정도 된다. 그러나 인구 밀도는 어마어마하다. 인구는 2022년 기준 217만 명으로 웬만한 우리나라 광역시 수준이다.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구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난 1948년,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곳으로 강제 이주해야 했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1994년 5월부터 팔레스타인 자치가 시작됐지만 2007년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정권을 잡았고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은 고립 심화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주민들의 자국 내 이동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당국의 승인 없이 가자 지구 분리 철망을 넘는 것은 불법이다. 상공은 이스라엘 영공이며, 이 지역의 약 40㎞ 길이의 연안 밖 해상은 이스라엘 영해라 해상 이동도 불가하다.
가자 주민들의 유일한 탈출로는 이집트 북동쪽 끝과 이스라엘 남서쪽 끝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시나이 반도를 통한 육로다. 그러나 이집트 역시 2007년부터 엄격한 국경 통제를 시행 중이고 최근 경비 태세를 한층 강화했단 전언이다.
시나이인권재단의 한 관계자는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이집트 병력이 국경 인근에 추가로 배치돼 정찰 임무를 하고 있다"고 알렸다.
주요 국경 포인트인 라파 검문소는 지난 9일과 10일 의문의 공격을 받아 폐쇄됐다. 라파 검문소는 하루 평균 400명의 가자 주민 이동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왔지만, 검문소 폐쇄로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폐허가 된 가자지구 가자 도심 전경.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방공호도 없어"...심각한 인도주의적 문제
사면이 막힌 가자 지구라 지역 내 경제 활동은 거의 전무하다. 대다수의 주민이 국제기구와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살아간다. 기반 시설은 노후해 전력은 하루 반나절만 공급되고 식수 부족은 일상이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따르면 가자 주민의 절반 이상이 식량 불안정을 겪는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로 유입되는 전력과 식수, 연료, 식량을 통제한다. 차단한 국경은 일부 교역과 인도주의적 지원 목적에만 열어 놓고 있다.
그랬던 이스라엘이 전쟁을 선포하면서 가자 '전면 봉쇄'를 선언했다. 이제 주민들은 남은 자원만으로 버텨야 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현재 가자 지구 내 대다수의 상점에서 남은 식량 재고는 한 달 치에 불과하다. WFP는 "이마저도 사람들이 식량 사재기에 나서면서 빠르게 고갈될 예정"이며 전력이 끊긴 상황이라 남은 재고가 빠르게 부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8일(현지시간) 살던 집을 떠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여기에 사흘째 이어지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할 방공호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하에 숨기에는 건물이 무너져 잔해에 깔릴 위험이 크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간밤에만 200개가 넘는 가자 지구 목표물을 타격했다. 주택 건물과 병원, 수많은 이슬람 사원 등이 표적이 되는 데 현재까지 약 90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졌다.
UNRWA가 가자 내 학교 83곳을 임시 대피시설로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 9일에 90%가 찼다. 약 13만 7000명이 보호시설에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이스라엘 공습에 집이 사라진 나머지 팔레스타인들은 갈 곳이 없다.
CNN이 인터뷰한 가자 지구에 사는 13세 소녀 나딘 압둘 라티프는 가족과 이웃들로부터 빨리 가자를 떠나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대체 어디로 가야 하냐"며 "우리가 갈 안전한 장소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피란길에 오르길 포기한 나딘과 그의 가족이지만 이제 마실 물도 없다. 그는 "어제(9일)부터 식수 공급이 끊겼다. 전력이나 인터넷도 거의 쓰질 못하는 상황이고 식량을 사러 집 밖을 나갈 수도 없다"고 알렸다.
전투기 소리가 어제보다 오늘 더 빈번히 들리는 상황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식탁 밑에 몸을 웅크리는 것뿐"이라고 나딘은 덧붙였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