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건 등에 경영 간섭…공정위 시정 명령에 항소
쿠팡-제조사 힘의 추 어디로?...판결 결과 주목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쿠팡이 LG생활건강 등 제조 대기업 손을 들어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기한 행정소송 결과가 조만간 나온다. 이번 항소심 결과에 따라 쿠팡과 제조 대기업간의 힘겨루기 판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이 제기한 공정거래위원회 시정명령 취소 청구 소송의 최종 변론기일은 오는 6월 8일에 열린다. 변론기일이 종결되고 나면 남은 절차는 판결뿐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2021.03.12 pangbin@newspim.com |
◆ 쿠팡 "우월적 지위 없다"…재차 강조
공정위는 2021년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혐의로 쿠팡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쿠팡이 2017~2020년 사이 LG생활건강 등 직매입 거래를 맺은 제조기업에 다른 유통채널의 가격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광고를 강매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는 이를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경영권 간섭이라고 봤다.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아닌 온라인 유통업체인 쿠팡이 제조 대기업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쿠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신생 유통채널에 불과한 쿠팡이 LG생활건강 등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항소심에서도 쿠팡은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지난 6일 열린 변론기일에서 윤혜영 리테일사업 대표 부사장은 "LG생활건강이 쿠팡에 납품한 단가가 다른 유통채널 소비자 판매가보다 높았다"며 "페리오, 코카콜라 등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를 가진 LG생활건강의 상품을 취급할 수밖에 없어 연간 250억원의 손실을 보면서도 상품을 판매했다"고 말했다.
이어 "쿠팡이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면 LG생활건강이 손실을 보고 있던 쿠팡에게 납품단가를 낮춰줬을 것"이라며 "LG생활건강 측에서 마트 3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많이 당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데, 그래서 쿠팡을 상대로 신생 유통업체 길들이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쿠팡은 공정위가 문제 삼은 최저가 판매 정책, 일명 '다이나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에 대해서도 시장 가격을 교란하는 게 아니라 뒤따르는 것 뿐이라며 남용성을 부인했다.
공정위는 쿠팡이 경쟁 온라인사가 가격을 낮추면 따라 낮추는 '다이나믹 프라이싱' 정책을 운영하며 납품업자의 경영 활동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윤 부사장은 "다이나믹 프라이싱은 판매 시점에 소비자 가격을 참고할 뿐이지, 먼저 무리하게 시장가격보다 낮춰 판매하는 게 아니다"라며 "다른 유통업체도 비슷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년 말부터 CJ제일제당의 상품이 쿠팡 로켓배송 대상 상품에서 제외됐다.[사진=CJ제일제당] |
◆ 쿠팡 승소시 제조업 '눈치보기' 더 심해질 듯
쿠팡의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몸집이 커지며 거래상 지위가 높아진 쿠팡에 '정당성'이라는 날개가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쿠팡과 거래하는 제조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이 LG생활건강에 납품단가 협상을 제안했던 2019년 당시 기록했던 매출은 7조1530억원이었지만, 2022년엔 이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26조5917억원(환율 1291.95 기준)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9년 쿠팡을 공정위에 곧바로 신고했던 LG생활건강과 달리 쿠팡과 CJ제일제당의 마진율 협상 갈등이 반년 가까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이유도 이처럼 쿠팡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쿠팡과 마진율 협상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던 CJ제일제당은 작년 12월 초부터 쿠팡에 상품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 이후 CJ제일제당은 다른 온라인 유통 채널에서 대대적인 기획전을 진행하는 등 쿠팡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생활용품 업계 1위인 LG생활건강과 식품업계 1위인 CJ제일제당과 거래가 중단됐음에도 쿠팡은 오프라인 유통기업을 뛰어넘어 국내 유통업계 1위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하며, 사업 확대를 예고했다.
현재 쿠팡의 매출은 롯데의 유통 계열사가 포함된 롯데쇼핑(15조4760억원)보다 높고, 신세계그룹의 할인점·이커머스·편의점, 백화점·홈쇼핑 등 유통 계열사 합산 매출액(30조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쿠팡은 지난달 초 연간 실적을 발표하며 쿠팡이 현재 국내 유통 시장(602조원) 전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이 4.4% 수준에 불과하다며, 로켓배송 취급 상품 수를 늘려 점유율을 더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액 수준으로 보면 이제 쿠팡은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뛰어 넘는다"라며 "제조기업 입장에선 점점 더 쿠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