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정책·감독' 금융위로, 금감원은 감독 집행만
윤석헌 원장, 사모펀드 문책에 "출발부터 문제의 씨앗"
입법조사처서도 금감원 독립 힘 싣는 보고서 발간
[편집자] '야금(冶金)'은 돌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금융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첫단부터 끝단까지 주목받는 건 몸집이 큰 사안뿐입니다. 야금 기술자가 돌에서 금과 은을 추출하듯 뉴스의 홍수에 휩쓸려 잊혀질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사고를 되짚어보는 [한국금융의 뒷얘기 야금야금] 코너를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선보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후 개선된 건 있는지 등 한국금융의 다사다난한 뒷얘기를 격주 금요일 만나보세요.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자동차 엑셀과 브레이크는 붙어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을 수 있습니까?" 최근 금융감독원 독립이 다시 화두에 올랐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옵티머스 등 작년부터 잇따라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의 해결 방안으로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공방이 치열하다. 반대론자는 전자(엑셀과 브레이크 같이)의 논리를, 찬성론자는 후자(엑셀과 브레이크 따로)의 논리를 펼친다. 과연 어느 쪽에 힘이 실릴까.
◆ 불편한 동거, 10여년 전부터
금감원 독립은 금감원이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이다 보니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주장이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기관인 금융위는 공적 민간기관인 금감원을 산하에 두고 지도·감독한다. 이에 금감원은 예산 편성이나 인사 권한 등에서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본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제약이 있다. 금융위가 금융회사 검사 금융산업(육성) 및 금융감독 정책을 맡고, 금감원은 금융감독 집행(금융회사 검사·감독)만 해서다. 금융'감독'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반쪽짜리 감독업무를 하는 셈이다.
현 금융감독 체계(금융위가 정책을 모두 담당)는 2008년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금융산업 정책을 맡고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금감원)가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구조였다. 정부는 금융산업을 선진화하려면 분산된 정책과 감독 기능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금융위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금융산업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규제가 다수 완화됐다. 사모펀드 시장이 대표적이다. 금융위는 2015년 사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개인의 사모펀드 최소 투자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다. 전문사모운용사 자기자본 요건을 6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인가가 아닌 등록만으로 설립할 수 있게 했으며, 사모펀드 설정은 사전 승인에서 사후 보고만으로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급성장했다. 수탁액이 2019년 478조1000억원으로 2014년의 2.3배로 늘었다.(같은 기간 전문사모운용사 10곳→217곳, 공모운용사 76곳 →75곳)
◆ 사모펀드 문책에 작심발언
그러나 지난해부터 사모펀드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DLF,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잇따라 터졌다. 금감원에 관리·감독 소홀을 꾸짖는 화살이 연일 날아들었다. 금감원은 부족함을 인정한 동시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규제를 풀어준 금융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조직이었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조직이 책임을 지면 돼요. 하지만 지금은 쪼개져있다 보니 우리가 제도를 이렇게 바꿀 거야, 잘못되면 네가 책임져 하는 식이거든요. 권한과 책임은 같이 가야하는 것 아닌가요."(금감원 고위 관계자)
결국 윤석헌 원장이 날선 목소리를 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시작하면서 금융위가 출발했습니다. 금융산업 육성과 감독이라는 상치된 목적으로 출발부터 문제의 씨앗을 안고 있었습니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위의 권한 아래에서 감독 집행을 담당해 예산, 인원 문제가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저희는 감독 집행에서도 감독규정을 갖고 있지 않아 시장 상황을 즉시 우리 의지대로 감독 집행에 반영하기 참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가 검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의원들로부터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거듭 문책을 받자 꺼낸 말이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부터 금감원 독립을 주장해왔다. 2년여 전 취임 때에도 전임자들과 달리 "금감원을 향한 세간의 평가가 우호적이지 않은 원인은 금감원이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미흡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며 독립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후 공개석상에서 금감원 독립을 언급하지 않다가 이번에 작심 발언에 나선 것이다. 옆에 있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독립방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겠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을 정도다.(아직 독립방안을 제출하지는 않음)
◆ 국회서도 논제로
금감원 독립을 위해선 법을 개정해야 한다. 올 들어 국회에서도 금감원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점이 사뭇 달라진 부분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7월 같은 당 윤창현 의원 주최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방향' 세미나에서 "감독체계만큼은 최소한 독립해서 독자적인 감독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날 윤 의원도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이 현 금융감독 체계에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금감원 독립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했기에 여당도 긍정적인 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금감원 독립에 힘을 싣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금융산업과 금융감독 정책의 분리를 통해 금융감독 정책의 독립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대신 금융감독기관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게 골자다. 사모펀드 규제가 완화된 후 환매연기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해외와 비교했을 때도 금융감독 정책과 집행이 분리된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근거도 제시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도 금융시스템 안정성 평가를 한 후 금감원에 보다 많은 운영 및 집행권한을 부여하라고 권고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전문가들도 금감원 독립에 힘을 싣고 있다. 대신 금감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지 않도록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 금융감독 체계가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다가 이번 사모펀드 사태만 문제가 된 게 아니에요. 카드, 저축은행 등 사태가 많았죠. 현재 금감원은 법률상 감독상 명령이나 처분을 할 권한이 없어요. 수퍼바이저(supervisor·감독자)가 아닌 이그제미네이터(examinator·검사관) 역할만 할 수 있는 거에요. 금감원이 잘한다는 게 아니라, 진짜 썩은 곳을 보지 못하고 금감원만 보는 게 문제예요. 금융감독에 자율성과 책임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한 조직이 맡아서는 안돼요. 금융위를 해체하고 감독권을 금감원에 줘야해요. 이후 금감원 통제를 위해 금감원을 시장감독원과 건전성감독원으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전성감독 산하에 소비자보호를 넣고요." (전성인 홍익대 교수)
"금감원 독립 뿐만 아니라, 업무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금융감독 업무는 미시적 감독, 거시적 감독으로 나뉘어요. 현재 이 부분이 정비돼 있다고 보지 않아요. 독립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할 수 없는 거시적 감독은 떼내고, 미시적인 감독기관이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
[공공기관 지정은?]
사모펀드 사태의 또 다른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게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이다. 2007년 기관의 공적인 성격을 감안해 기타 공공기관에 지정됐던 금감원은 2년 후인 2009년 감독 업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다시 공공기관에서 풀려났다. 채용비리, 감사원 지적 등으로 구설에 오른 후인 2018년 공공기관 재지정 논의가 있었지만 기획재정부에서 채용비리 근절, 공공기관 수준의 경영공시 이행, 엄격한 경영평가, 비효율적 조직 운영문제 해소 등의 조건을 달고 결정을 유보했다. 올해 사모펀드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재지정해 정부의 관리 · 감독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현재 기재부는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에 대해 검토 중이다. 결과는 내년 1월 말께 나온다.
milpar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