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 종료
재건축 수익성 저하 불가피...조합 내 갈등 높아져
[서울=뉴스핌] 김지유 기자 =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조합원들의 재건축 사업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요. 차라리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면서 후분양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요." (강남권 A재건축 조합 관계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서울 알짜 단지들이 대거 분양을 미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공공 재건축을 통해 용적률을 높여 정비사업 공급을 늘리겠단 방침이지만 사업 수익성이 줄면서 조합들이 후분양을 선택해 공급절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돼 이날부터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한 단지들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
◆ 일반 분양가, 지자체 심의 통과해야...재건축 수익성 '뚝'
기존에는 공공택지에서 공급된 단지들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됐다. 앞으로는 서울 18개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 영등포, 마포, 성동 등) 309개동, 경기도 3개시(광명, 하남,과천) 495개동에 있는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은 지방자치단체 분양가상한제 심사위원회가 분양가를 심의한다. 각 단지들은 이를 통과해야만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일반 분양가가 기존 대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에서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는 택지비와 건축비에 건설업체의 적정 이윤을 보탠 분양가로 산정해야 한다. 이 때 건축비는 국토교통부가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기본형 건축비가 적용된다. 지난 3월 기준 기본형 건축비는 3.3㎡당 633만6000원이다.
지금까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를 관리해 왔다. HUG가 보증하는 분양가는 주변 새 아파트 공급가 대비 최대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HUG 관리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분양가가 결정되는 셈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경우 주변 시세보다 약 70~80% 저렴하게 분양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건축 단지들은 일반 분양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건축비 등 사업비를 충당해 왔다. 그 동안 일반 분양이 많을 수록 사업성이 좋은 단지로 평가된 이유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일반 분양가를 크게 낮춰야 해 분양사업의 수익성이 낮아지고 그 만큼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늘어난다. 특히 조합원 분양가보다 일반 분양가가 낮게 책정될 것으로 전망돼 일반 분양 물량이 많을 수록 사업 진행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 재건축 조합들, 후분양도 불사...조합 내 갈등 심화돼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조합들이 사업 일정을 장기간 연기해 사업이 표류하거나 차선책으로 후분양을 선택할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 시행, 중도금과 이주비 대출 등에 제약이 생긴 데다 일반 분양가도 대폭 낮춰야 해 재건축 사업을 서두르기가 쉽자 않다는 분위기다.
실제 서울 알짜 재건축 단지들 사이에서 후분양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송파구 신천동 미성·크로바와 진주아파트는 후분양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과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등 분양가상한제를 피한 강남권 알짜 단지들도 후분양 여지가 남아 있다. 이들은 HUG 분양 보증 유효기간인 2개월 내 HUG의 분양가와 분양가상한제 분양가 중 수익성을 비교해 결정할 예정이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분양 방식을 선택하게 되면 조합원들이 후분양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둔촌주공 조합은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눈 앞에 두고 지난 24일 HUG의 분양 보증서(3.3㎡당 2979만원)를 발급받은 뒤 27일 강동구청에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했다. 오는 9월 5일 총회에서 조합원들은 HUG 분양가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놓고 최종 일반 분양 방식을 선택할 계획이다. 일부 조합원들이 후분양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HUG안을 폐기할 경우 후분양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도 서초구청에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했지만 향후 조합원들 간 논의를 통한 후분양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 단지가 HUG에서 분양 보증을 받은 일반 분양가는 3.3㎡당 평균 4891만원이다. 이는 조합원 분양가(3.3㎡당 평균 5560만원)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일부 조합원들이 후분양을 원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강남권의 A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현재 조합설립 단계로 사업 초기인 만큼 일단 일정을 추진하자는 분위기였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일정을 늦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조합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분양이 임박한 시점이라면 향후 규제가 완화될 수 있으니 후분양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남권 B재건축 조합 관계자도 "지금까지 HUG의 엄격한 분양가 규제에도 조합원들의 갈등이 심했는데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오죽하겠느냐"며 "선분양과 후분양 방식을 놓고 조합원들 간 갈등이 클 것으로 예상돼 조합에서도 다양한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kimji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