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보다 인간적 면모에 집중한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갈릴레이와 셰익스피어가 만나는 상상…뮤지컬 '최후진술'
케플러와 만나 지동설을 연구하는 뮤지컬 '시데레우스'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그래도 지구는 돈다."
종교 재판 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사실만은 변함 없다.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조금씩 변형되면서 갈릴레이에 대한 이미지는 금기에 도전한 과학자로 굳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갈릴레이는 현실에 순응했고 권력욕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갈릴레이의 진짜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 인간 갈릴레이에 집중…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국립극단이 공연 중인 '갈릴레이의 생애'(연출 이성열)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다. 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처음 접하게 된 40대 중반 이후 30년간의 삶을 그린다. 고문의 위협으로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철회하지만 몰래 연구를 지속해 과업을 완성한 갈릴레이의 삶을 통해 '진실을 앞에 둔 지식인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
작품은 갈릴레이의 업적보다 인간적 면모에 집중한다. 실제로 망원경을 최초로 발견하지 않았지만 지원을 받기 위해 짐짓 모르는 척하는가 하면, 스스로 맛있는 음식과 육체적인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투쟁보다 망명을 선택하고, 폭력에 희생되기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을 택한 갈릴레이의 삶은 인간이라면 매우 당연한 일련의 선택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진실을 추구하고 알리고자 노력한 지식인으로서 책임감도 느껴진다.
공연은 매우 유쾌하게 흘러간다. 행복한 삶이라고 명명하기는 어렵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발랄하다. 갈릴레이(김명수)를 제외한 12명의 배우들이 다역을 맡으며, 음악과 안무를 통해 극의 분위기를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무대 장치와 영상은 흡사 우주 속에 있는 듯한 느낌도 선사한다. 이성열 연출은 "공연 중간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브레히트 희곡의 대표적 특징인 생소화 효과다. 극의 재미를 위한 장치로서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뒀다"고 설명했다. 오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 갈릴레이와 셰익스피어가 만난다면?…뮤지컬 '최후진술'
뮤지컬 '최후진술'(연출 성열석)은 1564년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간 갈릴레이와 셰익스피어가 만났다는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과학과 예술의 통상적 이분법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이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과 그의 최후진술을 뮤지컬적인 서사로 풀어내면서, 역사 속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해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자랑한다.
뮤지컬 '최후진술'에 출연하는 배우 고유진(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이승현, 박규원, 백형훈, 최민우, 최석진, 최성욱, 유성재 [사진=업플레이스] |
갈릴레이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요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세 인물의 대화를 통해 지동설을 지지한다. 때문에 법정에 끌려나온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대화>의 속편을 쓰기로 맹세하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천국 또는 지옥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이 여정에서 만난 셰익스피어는 갈릴레이가 천국행 유람선을 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다.
갈릴레이와 셰익스피어가 주고받는 대화 혹은 넘버는 별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과 별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마음이 결코 분리돼 있지 않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반짝이는 무대와 시적인 가사, 록 사운드에 클래식과 팝의 느낌을 가미한 중독성 강한 넘버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자랑한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속한 시대의 느낌을 전달하는 악기,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각기 다른 음악적 콘셉트가 특징이다. 오는 6월 9일까지 예스24 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된다.
◆ 두 천문학자가 추구한 진실…뮤지컬 '시데레우스'
뮤지컬 '시데레우스'(연출 김동연)는 갈릴레이가 저술한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서 제목을 따왔다. 케플러가 갈릴레이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다. 갈릴레이 책의 제목은 '별이 전하는 소식, 별의 전령'을 뜻한다. 케플러가 '우주의 신비'라는 연구에 대한 편지를 갈릴레이에게 보내면서 시작돼 두 학자가 금기시되던 지동설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뮤지컬 '시데레우스'에서 갈릴레오 역을 맡은 배우 고영빈, 정민, 박민성 [사진=충무아트센터, ㈜랑] |
작품은 2017년 아르코-한예종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 독회에서 처음 선보인 후, 같은 해 충무아트센터 스토리작가 데뷔 프로그램 '블랙앤블루' 리딩공연에 이어 2년 간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 김동연 연출은 "처음 블랙앤블루 창작뮤지컬 지원 프로그램에 멘토링으로 참여해 이 작품을 만나게 됐다"며 "연출로 다시 참여하게 돼 의미가 깊고, 더욱 심혈을 기울이려고 한다"고 밝혔다.
개발 때와 달리 갈릴레이의 딸 수녀 마리아가 추가됐다. 17세기 지동설 연구의 위험과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시대의 혼란을 대변한다. 또 공연장 안이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되도록 영상을 활용한 무대미술, 4인조 라이브 밴드를 통한 생동감 있는 연주를 선사한다. 오는 17일 개막해 6월 30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