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전문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9월 20일 실시 예정인 자민당 총재 선거의 쟁점으로 헌법 개정을 내세웠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2일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関)시에서 열린 지지 집회에서 “언제까지 (개헌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당의 헌법 개정안을 다음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속도를 내야 한다. 이번 총재 선거가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개헌안 제출 시기를 분명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베가 이토록 집착하는 개헌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해 ‘자위대’와 ‘전쟁’이다. 일본의 집권 여당 자민당은 지난 3월 당 대회에서 헌법 9조의 전력 불보유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9조의 2’에 자위대 설치 규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제안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헌법적 근거가 없는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마련해 사실상 군대 보유를 명문화함으로써,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때부터 이어온 평생의 숙원이다. 아베 자신도 여러 차례 개헌이 “필생의 사명”이라며 재임 중에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혀 왔다.
하지만 아직 자민당 내에서도 아베 총리의 개헌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아베와 맞대결을 펼치게 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전 간사장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당내 확실한 논의가 먼저”라면서, 성급한 개헌안 제출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론도 아직은 개헌에 냉랭한 편이다. 아사히신문이 8월 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 찬성은 31%, 반대는 52%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개헌’을 자민당 총재 선거의 쟁점으로 삼고자 하는 이유는 선거를 발판 삼아 개헌을 이루어내겠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총재 선거에서의 승리가 점쳐지는 가운데 개헌을 쟁점으로 삼아 개헌에 부정적인 이시바 전 간사장에게 압승을 거두게 되면 당내 이론(異論)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선거에서 개헌을 쟁점화해 여론을 환기시키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개헌이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는 주장을 펴는 것도 가능해진다. 총재 선거를 발판으로 개헌 성취에 대한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는 셈이다.
현재 아베 총리의 총재 선거 승리는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細田)파(94명)를 비롯해 아소(麻生)파(59명), 기시다(岸田)파(48명), 니카이(二階)파(44명), 이시하라(石原)파(12명) 등 5개 파벌이 아베 총리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에 의원 자율투표 방침을 밝힌 다케시타(竹下)파(55명)에서도 20명 이상이 아베 총리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파벌에 소속되지 않은 의원들까지 합하면 아베 총리가 확보한 표는 전체 자민당 의원 표(405표) 중 300표가 넘을 전망이다. 전체 의원 표의 75% 가까이가 아베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 규칙에 따르면 총재의 임기는 3년으로 3연임까지 허용된다. 일본은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총재 임기는 총리 임기와 같다.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해도 2021년 9월에는 퇴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베 총리로서는 총재 선거 승리 후에도 마지막 임기의 레임덕을 막고 개헌을 밀고 나갈 강력한 구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개헌을 주요 정치 과제로 내세움으로써 정권 말기 레임덕을 방지하고, 지지 기반인 보수층을 결집해 보다 강력한 정치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지방 표를 중심으로 반격을 노리고 있지만,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는 싱겁게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총재 선거 결과가 아니라, 개헌을 승부수로 던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아베 총리의 다음 행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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